기원전 167년, 한 그리스 사람이 자기 발로 로마의 흙을 처음 밟았어요. 그러나 손님으로 온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질이었어요. 한 해 전 피드나에서 마케도니아 왕의 팔랑크스가 무너지면서, 동맹을 망설였다는 이유만으로 아카이아 동맹의 지도층 천 명이 이탈리아로 끌려왔거든요. 메갈로폴리스 명문가의 아들이자 동맹의 기병대장을 지낸 그도 그 천 명 중 하나였습니다. 이름은 폴리비오스(Polybius)였어요.
그런데 이 패전국의 학자는 슬픔에 잠겨 있을 시간을 차라리 관찰에 썼습니다. 그는 곧 피드나의 승장 파울루스의 아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벗이 되었고, 정복자의 나라 한복판에서 한 가지 질문에만 매달렸어요 — 도대체 왜, 어떻게 이 도시가 이겼는가.
폴리비오스가 자란 세계는 폴리스의 세계였어요. 그리고 폴리스의 역사란 곧 정체(政體)가 끝없이 뒤집히는 역사였습니다. 그가 두 눈으로 보아 온 그 끝없는 순환을, 그는 마음속에서 한 단어로 불렀어요 — 아나퀴클로시스, 정체의 수레바퀴. 이건 그 수레바퀴를 거슬러 올라간 단 하나의 도시에 관한 이야기예요(Polyb. 6.2).
인질의 눈에 비친 수레바퀴
폴리비오스가 책에서만, 그리고 두 눈으로 보아 온 그 순환은 이런 모양이었어요. 어떤 도시는 한 사람의 손에 모든 것을 맡깁니다. 처음 그 한 사람은 힘으로 무리를 모으지만, 이윽고 정의와 은혜로 다스리는 참된 왕이 돼요. 그러나 왕위가 세습되어 권력을 당연시한 후손이 방종에 빠지면, 왕정은 강압과 사익의 참주정으로 썩었습니다. 그 폭정에 분개한 우수한 소수가 일어나 참주를 무너뜨리고, 다수의 지지를 업어 귀족정을 세웠어요(Polyb. 6.4-7).
여기서 멈출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예요. 그러나 귀족정 역시 멈추지 못했습니다. 그 우수한 자들의 자손이 특권을 당연시하고 탐욕에 빠지면, 소수가 다수를 짓밟는 과두정으로 타락했어요. 횡포를 견디다 못한 민중이 다시 그들을 끌어내리고 스스로 다스리는 민주정을 세웠습니다. 자유와 평등이 잠시 빛났어요. 그러나 그 자유를 당연하게 누리고 자란 다음 세대에 이르면 무질서와 매수와 선동이 판을 쳤고, 민주정은 폭민이 지배하는 중우정으로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혼란의 끝에서 다시 한 사람의 강한 자가 칼로 질서를 세우면 — 바퀴는 처음의 자리, 1인 지배로 되돌아갔어요(Polyb. 6.8-9).
왕정에서 참주정으로, 참주정에서 귀족정으로, 귀족정에서 과두정으로, 과두정에서 민주정으로, 민주정에서 중우정으로, 그리고 다시 왕정으로. 폴리비오스가 보기에 그 까닭은 단순했습니다 — 모든 단순한 정체 는 단 하나의 요소만으로 서 있기에, 그 요소가 썩으면 막을 길이 없었어요(Polyb. 6.10). 그것이 그가 평생 보아 온 그리스의 운명이었습니다. 폴리스들이 차례로 이 바퀴 위에서 솟았다 부서졌어요. 폴리스는 빛났으나 짧았습니다. 그런데 이 로마라는 도시는 어쩐 일인지 그 바퀴를 거스르는 듯 보였고, 그것이 인질의 눈을 사로잡았어요.
거의 왕, 그러나 왕이 아닌
폴리비오스가 로마의 거리에서 처음 눈여겨본 것은 집정관이었어요. 도끼 묶음을 든 호위들이 앞장선 그 사람은 거의 왕처럼 보였습니다. 평시에는 행정의 모든 줄기를 그러쥐고 원로원과 민회를 자기 뜻으로 소집하며 의제를 정했고, 전쟁이 나면 군을 통수하고 동맹을 징발하며 전장에서 거의 무제한의 명령권을 휘둘렀어요(Polyb. 6.12). 이것만 보면 로마는 왕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도시에 원로원이 있었어요. 백발의 의원들이 모인 그곳이 국고를 쥐고 있었습니다. 모든 수입과 지출, 사절을 보내고 받는 외교, 속주의 처분, 공공의 계약이 그 손을 거쳤어요. 집정관이 전장에서 아무리 전권을 쥐어도 군자금과 보급과 임기의 연장은 원로원이 쥐고 있어, 협조가 없으면 전쟁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Polyb. 6.13). 이것만 보면 로마는 귀족정이었어요.
그런데 또 민회가 있었습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관직을 선출했고, 법을 최종으로 승인했으며, 사형과 중죄를 재판했고, 강화와 동맹을 비준했어요. 명예를 줄지 형벌을 내릴지의 마지막 결정권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전장에서 왕 같던 집정관도 임기를 마치면 바로 이 시민들의 재판 앞에 책임을 졌고, 그토록 바라는 개선식조차 그들의 승인이 있어야 했어요(Polyb. 6.14). 이것만 보면 로마는 민주정이었습니다.
로마인에게 당신들의 정체가 무엇이냐 물으면, 누구는 왕정 같다 하고 누구는 귀족정 같다 하고 누구는 민주정 같다 할 것이었어요. 그리고 셋 다 옳았습니다. 바로 그 점에서 폴리비오스는 마침내 깨달았어요 — 로마는 그 셋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그 셋을 함께 가진 도시였다는 것을(Polyb. 6.11).
서로의 소매를 잡아끄는 평형
그것은 단순한 합산이 아니었어요. 세 권력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집정관은 왕 같으나 원로원의 돈과 민회의 재판에 매여 있었어요. 원로원은 살림을 쥐었으나 입법과 중대한 재판은 민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의제를 회의에 부치는 것은 집정관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민회는 명예와 형벌의 최종 권한을 쥐었으나 스스로 모이지 못했어요 — 그들을 부르고 안건을 내미는 것은 집정관이었습니다(Polyb. 6.15-17).
한 권력이 비대해지려 하면 나머지 둘이 즉시 그 소매를 잡아끌어 제자리로 돌려놓았어요.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평형. 폴리비오스는 그것을 보며 숨을 들이켰습니다. 이것이었어요. 단순한 정체는 한 요소뿐이라 그것이 썩으면 바퀴를 따라 다음 칸으로 굴러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세 요소를 한 몸에 품고 서로 견제시켰기에, 어느 한 요소가 타락으로 기울면 나머지 둘이 끌어내렸어요. 로마는 바퀴의 어느 한 칸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교정하는 정체였어요(Polyb. 6.18).
폴리비오스는 칸나이를 떠올렸습니다. 한 세대 전, 한니발이 로마군을 통째로 도륙한 그 끔찍한 날에도 로마는 강화를 구걸하지 않고 버텼어요. 그가 보기에 그 회복력의 비밀이 바로 여기, 세 권력이 서로를 붙드는 이 짜임에 있었습니다. 다만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으므로 마음 깊은 곳에 한 가지 단서를 달아 두었어요 — 혼합정체라 한들 변화에서 영영 면제되지는 않으리라, 로마의 정체에도 언젠가 쇠퇴의 날이 올 것이다(Polyb. 6.57, 발췌부). 그러나 그날은 아직 멀었고, 지금 이 도시는 세계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솟아나는 도시
폴리비오스는 군영에서도 같은 짜임을 보았어요. 스키피오를 따라 진영에 머무는 동안, 그는 로마 군단이 천막을 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것은 군대라기보다 하룻밤 사이에 솟아나는 도시였어요. 측량줄로 직각의 길을 긋고 정해진 자리에 천막을 세웠으며, 병사들은 재산 등급에 따라 가벼운 벨리테스부터 노련한 트리아리이까지 저마다의 위치를 알았습니다(Polyb. 6.19-32).
보초의 교대, 암구호, 군법의 가차 없음 — 어느 것 하나 우연에 맡겨진 것이 없었어요(Polyb. 6.34-37). 그리스의 어느 군대도 이처럼 매일 밤 질서를 다시 세우지 않았습니다. 폴리비오스는 깨달았어요. 진영의 이 엄격한 질서는 정체의 질서와 한 쌍이었다는 것을. 같은 정신이 도시를 짜고 군대를 짰습니다.
패전국의 학자는 정복자의 나라 한복판에서 마침내 자기 질문의 답을 손에 쥐었어요. 그리스는 빛났으나 바퀴 위에서 짧았습니다. 로마는 그 바퀴를 거슬렀거나, 적어도 늦추었어요. 그래서 이긴 거예요. 이것이 그가 후세에 남기려는 역사의 핵심이었습니다 — 화려한 일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를 아는 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실용의 교훈으로서(Polyb. 1.1-3,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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