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18년 가을, 한 카르타고 사람이 코끼리와 수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맥을 넘었어요. 그 전까지 알프스를 군대로 넘은 카르타고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가 그 첫 사람이 되려 한 이유는 단 하나, 적의 등 뒤를 치기 위해서였어요 — 바로 로마의 등 뒤였습니다.
이건 한니발이라는 한 천재 장군의 이야기예요. 그는 트레비아에서, 트라시메네에서, 그리고 칸나이에서 로마군을 거의 전멸시켰습니다. 어느 나라라도 그쯤이면 무릎을 꿇었을 거예요. 그런데 로마는 꿇지 않았어요. 그리스 출신 사가 폴리비오스(Polybius)가 평생에 걸쳐 던진 질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로마는 어떻게 53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거의 알려진 세계 전부를 손에 넣었을까(Polyb. 1.1-3). 그 답의 가장 밑바닥에, 알프스를 넘은 한 사람과 칸나이에서 쓰러진 8만, 그 앞에서도 부러지지 않은 도시의 이야기가 있어요.
알프스를 넘은 자
이야기는 깊어 가는 가을, 능선의 흰 것을 올려다보는 한니발에게서 시작돼요. 처음엔 구름인 줄 알았던 그것은 가까워질수록 눈 덮인 산마루였습니다. 알프스였어요. 뒤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 히스파니아와 갈리아에서 끌어모은 보병, 누미디아의 경기병, 그리고 코끼리들. 폴리비오스는 그 길의 험준함을 거듭 적어요(Polyb. 3.50-53). 좁은 벼랑, 미끄러운 빙판, 발을 헛디딘 짐승과 사람이 그대로 골짜기로 사라지던 일을요.
산악 부족은 바위 뒤에 숨어 위에서 돌을 굴렸어요. 행렬의 허리가 끊기자 한니발은 밤을 틈타 높은 봉우리를 먼저 점령하게 한 뒤, 매복한 자들을 거꾸로 위에서 내리쳤습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적은 사람이 아니라 추위였어요. 길이 얼어붙어 한 번 미끄러진 짐승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고, 어느 길목에서는 눈사태가 길 자체를 지워 버려, 바위를 깨고 새 길을 놓을 때까지 군대 전체가 산허리에 매달려 떨었습니다.
마침내 능선의 정상에서, 한니발은 구름이 갈라진 틈으로 멀리 보이는 평원을 손으로 가리켰어요(Polyb. 3.54) — 저것이 이탈리아다, 너희가 넘는 것은 이탈리아의 성벽일 뿐 아니라 로마 자체의 성벽이다. 보름의 도하가 끝났을 때, 산을 오르기 시작한 군대의 절반 남짓만 남아 있었습니다. 코끼리도 대부분 죽었어요.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은 로마가 상상조차 못 한 곳, 바로 그들의 등 뒤에 서 있었습니다.
호숫가의 안개와 꾸물대는 장군
로마는 처음에 한니발을 우습게 보았어요. 산을 넘느라 굶주린 군대가 무엇을 하겠느냐는 거였죠. 그 오만의 대가는 곧 치러졌습니다. 겨울의 트레비아 강가에서 첫 교훈이 왔어요(Polyb. 3.70-74). 한니발은 동생 마고를 강가 수풀에 매복시킨 채, 경기병으로 도발해 아직 아침도 먹지 못한 로마군을 차가운 강물로 끌어들였습니다. 허리까지 잠겨 건너온 병사들이 몸이 굳은 채 평지에 올라선 순간, 등 뒤에서 매복이 일어났고, 집정관 셈프로니우스의 군대는 그날 강가에서 부서졌어요.
이듬해 봄, 트라시메네 호수에는 더 큰 침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Polyb. 3.80-85). 호수와 산 사이로 난 좁은 길, 그 양옆 비탈에 한니발은 군대를 숨겼어요. 그날 아침 호수에서 안개가 피어올라 길을 덮었습니다. 집정관 플라미니우스는 한니발을 쫓는 데 눈이 멀어, 정찰도 없이 그 협로로 군대를 밀어 넣었어요. 안개 속에서 로마군은 앞의 전우조차 보지 못했고, 양옆에서 함성이 쏟아져 내렸을 때 적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무너졌습니다. 한쪽은 산, 한쪽은 물이었어요. 플라미니우스 자신도 그 혼란 속에 쓰러졌고, 한 집정관과 그의 군대 전체가 안개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로마는 비로소 두려워했어요. 원로원은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독재관으로 세웠습니다(Polyb. 3.87-90). 파비우스는 싸우지 않는 장군이었어요. 정면 회전을 한사코 피하고, 멀리서 따라붙어 보급선을 끊으며 전면전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인은 그를 비웃어 '꾸물대는 자(Cunctator)'라 불렀지만, 그 꾸물거림이야말로 무너져 가던 로마의 전력을 붙들어 두고 있었어요. 문제는 로마인의 자존심이 그 굴욕을 오래 견디지 못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기원전 216년, 로마는 다시 두 집정관에게 전에 없던 대군을 맡겨 결전에 내보냈어요 — 신중론자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와, 한시바삐 끝장을 보려는 회전론자 바로. 두 사람의 성정은 정반대였고 지휘권은 하루씩 번갈아 가졌는데, 한니발은 그 분열을 멀리서 읽고 있었습니다.
칸나이 — 포위의 날
칸나이의 들판은 넓고 평평했어요. 한니발은 일부러 그런 곳을 골랐습니다. 폴리비오스는 그가 기병에서 우세하다는 것을 알고, 기병이 마음껏 달릴 수 있는 평지로 로마를 끌어들였다고 적어요(Polyb. 3.107-110). 로마군은 수에서 압도적이었습니다 — 8만에 가까운 대군이었어요. 바로는 그 머릿수만 믿었습니다.
그날 아침, 한니발은 진형을 이상하게 짰어요. 보통 장군은 중앙을 가장 두텁게 세우지만 그는 반대로 했습니다. 가장 약한 히스파니아·갈리아 보병을 중앙에 두되 그 중앙을 적을 향해 활처럼 앞으로 불룩하게 내밀고(Polyb. 3.113), 양 날개에는 가장 단단한 아프리카 중장보병을 뒤로 물려 세웠어요. 그가 그린 것은 진형이 아니라 덫이었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자 로마의 거대한 보병 밀집대가 중앙을 정면으로 밀어붙였고, 한니발의 굽은 중앙은 그 무게에 밀려 천천히 뒤로 휘었어요. 로마군은 적이 무너진다 믿고 승리의 냄새를 맡으며 더 깊이 밀고 들어갔습니다. 바로 그것이 한니발이 원한 것이었어요. 앞으로 굽었던 카르타고의 중앙선이 이제 안쪽으로 오목하게 휘어, 로마군은 자기도 모르게 주머니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뒤로 물려 두었던 양 날개의 아프리카 보병이 안쪽으로 돌아 로마군의 양옆을 동시에 덮쳤어요. 들판 끝에서 로마 기병을 쫓아내고 돌아온 카르타고·누미디아 기병은 로마 대군의 등 뒤를 막아섰습니다. 앞도, 좌우도, 뒤도 모두 적이었어요. 폴리비오스가 양 날개로 적을 감싸는 그 전술을 묘사하는 대목이 여기예요(Polyb. 3.115-116) — 훗날 군사가들이 양익 포위(double envelopment)라 부르게 될 바로 그 형태였습니다. 이제 그것은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었어요. 포위된 로마군은 너무 빽빽이 갇혀 칼을 휘두를 공간조차 없었고, 카르타고 군은 바깥쪽부터 한 겹씩 좁혀 들어갔습니다. 폴리비오스는 그날 쓰러진 로마군의 수를 전해요(Polyb. 3.117) — 약 8만 에 이르는 전사자. 로마 역사상 단 하루에 그만한 피를 흘린 적은 없었어요.
신중론자였던 집정관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그 한복판에서 죽었습니다. 회전을 끝까지 반대했으나 동료에게 끌려 나온 그는 도망치지 않고 싸우다 들판에 쓰러졌어요. 회전을 고집했던 바로는 소수의 기병과 함께 전장을 빠져나가 살아남아, 패잔병을 수습하러 로마로 향했습니다. 가장 책임이 큰 자가 살고 가장 신중했던 자가 죽었다 — 그것이 칸나이가 남긴 쓰라린 아이러니였어요.
부러지지 않은 도시
소식이 로마에 닿았을 때, 도시는 통곡으로 뒤덮였어요. 거의 모든 가문이 그날 들판에서 누군가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폴리비오스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시작돼요. 칸나이에서 모든 것을 잃은 듯 보였던 로마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원로원은 강화를 청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포로가 된 병사들의 몸값을 치러 데려오라는 제안조차 거부했습니다 — 도망쳐 살아남은 자에게 나라의 돈을 쓸 수 없다는 거였어요(Polyb. 3.118). 그들은 노예까지 무장시켜 새 군대를 일으켰고, 다시 파비우스의 지구전으로 돌아갔습니다. 한니발은 이긴 전투마다 이겼으나, 그 전쟁을 끝낼 수는 없었어요.
세월이 흘렀습니다. 로마는 전쟁의 무대 자체를 바꾸었어요. 젊은 사령관 스키피오 — 훗날 '아프리카누스'라 불릴 그 사람이 — 전선을 한니발의 본국 북아프리카로 옮긴 거예요. 마침내 기원전 202년, 자마의 들판에서 두 사람이 마주 섰습니다. 본국을 지키러 소환된 한니발과, 한니발의 전술을 누구보다 깊이 연구한 스키피오가요. 그날의 승자는 스키피오였습니다(Polyb. 15 현존, 권1-3 범위 밖 보강). 칸나이의 학살자가 끝내 무릎을 꿇었고, 2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났어요.
이 회복력은 곧 로마가 헬레니즘 세계로 시선을 돌리는 발판이 됩니다. 그 첫 동방 무대는 다음 편 "영화로운 땅"은 왜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었나에서 이어집니다.
출처 및 라이선스
본 페이지는 다음 출처를 바탕으로 자체 작성한 학습용 역사 콘텐츠입니다.
- 원전: Polybius, Historiae — 그리스어 원문 (저작권 만료, antique)
- 확인 영역본 (PD): Project Gutenberg #44125 · #44126 (역자: Evelyn S. Shuckburgh, 1843–1906)
- 본 콘텐츠는 특정 한국어 번역본의 표현·구성·해설을 모방하지 않으며, 원전 §-번호를 직접 인용해 자체 서술했습니다.
댓글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