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68년 여름, 한 사람이 이집트의 문턱에 서 있었어요. 그는 자기 이름 옆에 신을 뜻하는 한 단어를 붙인 왕이었습니다. 그 앞에는 알렉산드리아가, 도서관과 등대와 디아도코이의 모든 영광이 한자리에 모인 도시가 손가락 한 마디 거리에 놓여 있었어요. 그것을 손에 넣으면 알렉산드로스 이후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이루는 셈이었습니다. 동방과 이집트를 한 왕홀 아래 다시 묶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그날, 군대도 함대도 거느리지 않은 늙은이 한 사람이 두루마리 하나와 평범한 지팡이를 들고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지팡이 끝으로 모래 위에 원 하나를 그렸어요. 그 가는 선 하나가, 동방에서 가장 강한 왕을 그 자리에서 무릎 꿇립니다. 이건 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한 제국이 다른 제국을 굴복시킨 이야기예요.
신과 광인은 한 글자 차이였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예요. 그는 자기 이름 옆에 에피파네스(헬라어로 "현현한 자", 곧 사람의 몸을 입고 땅에 내려온 신이라는 뜻)라는 칭호를 새겨 넣었습니다. 주화마다 그의 옆얼굴이 광배를 두른 채 찍혀 나왔어요. 그러나 그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발음을 한 글자만 비틀어 그를 다르게 불렀습니다. 에피마네스, 곧 "미치광이"라고요. 수행원을 따돌리고 평민들 틈에 끼어 공중목욕탕을 어슬렁거리거나, 길거리에서 아무에게나 농을 던지고 향유를 끼얹는다는 소문이 안티오크에서부터 따라다녔거든요(Polyb. 26.1 단편). 신과 광인은 한 글자 차이였고, 그 한 글자가 그의 평생을 따라다녔어요.
그해 여름, 그 한 글자짜리 신은 자신의 권능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제6차 시리아 전쟁이었어요. 그는 외조카가 다스리는 프톨레마이오스 이집트를 침공했습니다(Polyb. 28 단편). 외조카라는 사실은 그의 발걸음을 늦추지 못했어요. 펠루시움이 떨어졌고, 멤피스가 떨어졌으며, 한때 그는 어린 프톨레마이오스 6세 필로메토르의 후견인을 자처하기까지 했습니다. 나일강 삼각주의 옥토가 그의 발밑에 깔렸고, 이제 남은 것은 바다에 면한 마지막 보석 알렉산드리아 하나뿐이었어요.
군영의 막사 안에서 안티오쿠스는 지도를 들여다봤어요. 손가락 한 마디면 닿을 거리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말로 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모든 것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신은, 같은 여름 지중해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피드나의 그림자 — 한 계절 만에 무너진 왕국
같은 해, 마케도니아에서 또 하나의 왕국이 무너지고 있었어요. 피드나의 들판이었습니다. 기원전 168년 6월, 로마 군단이 마케도니아 왕 페르세우스의 팔랑크스와 맞붙었어요. 한때 알렉산드로스를 세계의 끝까지 데려갔던 그 창의 숲, 사리사의 장벽이 로마의 군단보병 앞에서 갈라졌습니다. 지형이 어긋나 팔랑크스에 빈틈이 생기자, 그 틈으로 로마군이 칼을 들고 파고들었어요. 하루 만에 마케도니아 왕국이 끝났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후계 왕국 가운데 가장 오래된 안티고노스 왕조가 그날 들판에 시체로 누웠고, 페르세우스는 사로잡혀 훗날 로마의 개선식에서 사슬에 묶여 끌려다니게 될 운명이었어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폴리비오스만큼 깊이 이해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바로 그 패전한 그리스 세계에서 인질로 로마에 끌려간 사람이었고, 평생에 걸쳐 단 하나의 질문에 매달렸어요. 어떻게 로마는 채 쉰세 해도 안 되어 거의 온 세계를 자기 발밑에 두게 되었는가(Polyb. 1.1). 피드나는 그 질문의 답이 완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동방의 세 헬레니즘 강국 가운데 마케도니아가 지워졌고, 남은 것은 셀레우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 두 왕국뿐이었어요. 그리고 이제 로마는 그 둘 사이의 전쟁을 더 이상 구경만 하지 않기로 합니다.
원로원이 사절 한 사람을 동방으로 보냈어요.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였습니다. 군대도 함대도 거느리지 않고, 두루마리 하나와 수행원 몇, 손에 든 평범한 지팡이가 전부였어요. 그는 안티오쿠스가 로마에 인질로 있던 시절 알고 지낸 사이였습니다. 안티오쿠스는 옛 친구가 온다는 소식에 기뻐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로마의 사절은 우정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명령을 가지고 왔어요.
모래 위의 원
엘레우시스였어요.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안티오쿠스의 군대가 마지막 진격을 앞두고 멈춰 선 자리였습니다. 포필리우스가 다가왔을 때 안티오쿠스는 손을 내밀어 옛 친구의 손을 맞잡으려 했어요. 헬레니즘 군주가 익히 알던 의례였습니다. 인사, 안부, 그런 다음에야 본론이었죠. 그러나 포필리우스는 그 손을 잡지 않았어요. 그는 먼저 들고 온 두루마리를 내밀었습니다. 원로원의 결의문이었어요. 인사보다 먼저 답하라는 뜻이었습니다(Polyb. 29.27 단편).
안티오쿠스가 봉인을 뜯어 글을 읽었어요. 짧았습니다. 이집트에서 즉시 물러나라. 그뿐이었어요. 왕의 얼굴에서 미소가 천천히 가셨습니다. 그는 신이었어요. 알렉산드로스 이후 가장 넓은 동방을 다스리는 셀레우코스의 대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에게, 무장도 하지 않은 늙은이 하나가 두루마리 한 장을 내밀고 명령을 하고 있었어요. 거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신이 그 자리에서 굴복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을 벌기로 했어요. 헬레니즘 궁정의 오래된 수법이었습니다. "측근들과 상의한 뒤에 답하겠소." 위엄을 잃지 않으려는 목소리였어요.
포필리우스가 그를 봤습니다. 아무 말 없이, 손에 든 포도나무 지팡이를 내려다봤어요. 그가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안티오쿠스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로마인이 허리를 굽혀 지팡이 끝을 모래에 댔어요. 그리고 천천히, 왕의 두 발을 빙 둘러 원을 그렸습니다. 모래 위에 선 하나가 그어졌고, 신을 자처하는 자가 그 원 한가운데에 갇혔어요. 포필리우스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습니다.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그 자리의 누구도 그것을 명령이 아닌 것으로 들을 수는 없었어요. "이 원을 나서기 전에, 원로원에 줄 답을 내놓으시오."
침묵이 내려앉았어요. 안티오쿠스의 호위병들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들의 왕이 모욕당하고 있었으니까요. 칼 한 번이면 끝날 일이었어요. 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 지팡이 뒤에 무엇이 서 있는지를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것은 늙은이 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 뒤에는 피드나가, 한 계절 만에 알렉산드로스의 후계 왕국 하나를 들판에 눕힌 군단이 서 있었습니다. 모래에 그어진 가는 선은 사실 지중해 전체만큼 두꺼운 벽이었어요.
오랜 침묵 끝에 왕이 입을 열었습니다. "원로원의 뜻대로 하겠소." 목소리가 떨렸는지 어떤지는 사료가 전하지 않아요. 다만 그는 즉시 이집트에서 철군할 것을 약속했습니다(Polyb. 29.27 단편; Livy 45.12 평행). 그제야 포필리우스가 손을 내밀었어요. 이제 친구로서요. 안티오쿠스가 그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화해의 악수가 아니었어요. 누가 위에 있고 누가 아래에 있는지를 온 세상이 보도록 새겨 넣은, 항복의 악수였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끓던 분노
그날 엘레우시스의 모래 위에서 한 시대가 끝나고 한 시대가 열렸어요. 폴리비오스는 평생을 바쳐 묻던 질문에 대한 가장 선명한 답을 이 장면에서 봤습니다. 그는 헬레니즘 군주들의 허세를 차갑게 경멸하던 사가였어요. 다프네에서 노획품을 흉내 내며 부를 과시하던 안티오쿠스를 그가 얼마나 비웃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죠(Polyb. 30.25-26 단편). 그러나 엘레우시스의 장면 앞에서 그의 펜은 비웃지 않습니다. 그것은 비웃을 일이 아니었어요. 군대 없이 온 사절 한 사람이 지팡이 하나로 동방에서 가장 강한 왕을 그 자리에서 무릎 꿇렸으니까요. 책 첫머리에서 던진 질문 — 어떻게 로마가 세계를 삼켰는가 — 그 답이 모래 위의 원 안에 들어 있었어요.
그러나 신을 자처한 자에게 굴욕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곳을 향합니다. 안티오쿠스는 약속을 지켜 군대를 돌렸고 이집트에서 물러났어요. 그러나 그의 안에서 끓던 분노는 갈 곳을 잃지 않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를 향하던 그 정복욕, 신이라 불리고 싶던 그 자존심이 한 줌 모래 앞에서 짓밟혔거든요. 로마에는 손을 댈 수 없었어요. 피드나가 그것을 가르쳐 줬으니까요. 그렇다면 분노는 더 약한 곳으로, 손이 닿는 곳으로 흘러야 했습니다.
그의 시선이 북쪽으로, 시리아로 돌아가는 길목에 놓인 작은 땅에 머물렀어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산악의 작은 신전 도시, 자기들만의 율법과 자기들만의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는 고집스러운 백성의 땅이었어요. 좌절된 신은 그곳에서 자신이 여전히 신임을 증명하기로 했습니다. 엘레우시스에서 빼앗긴 신성을, 다른 신의 성전 위에서 되찾으려 했어요. 모래 위의 원에서 시작된 분노가, 다음 해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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