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국 512년부터 독도까지 — 울릉도 1,500년 단절과 재생
512년 신라에 복속된 동해 섬나라 — 울릉도 1,500년 단절과 재생의 기록
목차

출처: 한국관광공사 / KOGL 1유형 (출처표시)
도동항 파노라마 — 울릉도 역사 1,500년의 관문
동해 한가운데, 육지에서 약 217km 떨어진 섬이 있습니다. 갈 때도 배, 올 때도 배. 연간 60일 넘게 결항하는 파도 위에 떠 있는 화산섬이에요. 울릉도 이야기는 그 고립에서 시작됩니다. 섬은 5세기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고, 신라에 복속되었다가, 400년 무인도가 되었다가, 다시 사람을 받아들였어요. 이 1,500년의 단절과 재생이 오늘의 울릉도를 만들었습니다.
화산이 만든 섬 — 250만 년의 지질
울릉도는 약 250만 년 전 신생대 제4기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동해의 외딴 화산섬입니다. 현무암 용암류와 조면암 돔이 복합된 성층화산 구조이며, 섬 전체가 단일 화산체예요. 섬 외륜을 따라 깎아지른 해식절벽이 발달해 있고, 중앙에는 칼데라 분지인 나리분지가 남아 있습니다. 이 화산 지형이 곧 울릉도의 역사를 결정했어요. 절벽이 외부 침입을 막고, 칼데라 평지가 최초 정착지를 제공했으며, 화산암반이 여과한 청정 용천수가 봉래폭포로 흘러내렸습니다.
울릉도 5개 시대 연표
| 시대 | 연도 | 핵심 사건 | 비고 |
|---|---|---|---|
| 우산국 시대 | 기원전 ~ 512년 | 동해 고립 공동체 우산국(于山國) 존재 · 신라 이사부에 복속 |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 |
| 통일신라·고려 | 512 ~ 1417 | 동해 항로 거점 역할 · 왜구 침탈로 주민 고초 | 공도정책 배경 형성 |
| 공도정책 400년 | 1417 ~ 1882 | 태종 17년 거주민 전원 본토 이주 · 수토관(搜討官) 주기 파견 | 원시 생태계 보존 |
| 개척기·일제 강점기 | 1882 ~ 1945 | 고종 19년 개척령 · 1900년 울도군 설치 · 1905년 독도 시마네현 편입 | 어업·목재 수탈기 |
| 광복 이후 현대 | 1945 ~ 현재 | 대한민국 영토 확립 · 관광 개발 · 2012년 관음도 연도교 완공 | 울릉공항 건설 추진 중(미개항) |
우산국 — 512년 이전의 동해 섬나라
울릉도가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시점은 신라 지증왕 13년, 512년입니다. 그 이전 이 섬에는 우산국이라는 독자적인 공동체가 있었어요. 동해의 외딴 섬나라로 고구려·신라와 접촉하면서도 독립적인 삶을 이어 왔습니다. 6세기 이전의 생활 흔적은 출토 유물이 드물어 정확한 복원이 어렵지만, 어업과 채취를 기반으로 한 해도 공동체였을 거예요.
512년, 하슬라주(지금의 강릉) 군주 이사부가 군선을 이끌고 동해를 건너 우산국 복속에 나섭니다. 김부식이 1145년에 편찬한 「삼국사기」 지증왕 본기에는 그 방법이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어요.
"于山國在溟州正東海島 … 異斯夫爲何瑟羅州軍主 謂于山人愚悍 難以威來 可以計服 乃多造木偶師子 分載戰船 抵其國海岸 詐告曰 汝若不服 則放此猛獸踏殺之 國人恐懼降"
— 김부식, 「삼국사기」 지증왕 13년(512) 기사 (PD — 11세기 고려 관찬 사서)
현대어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우산국은 명주 정동 해도에 있었다 … 이사부는 우산국 사람들이 어리석고 사나워 위력으로는 굴복시키기 어렵다고 여기고, 나무 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선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해안에 다가가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를 풀어 밟아 죽이겠다'고 하니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 항복하였다." 나무 사자, 즉 목사자 위협으로 섬나라를 복속시킨 이 전략은 동아시아 고대사에서 꽤 독특한 장면이에요.
통일신라·고려 — 동해 항로의 거점
신라에 합병된 울릉도는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를 거치며 동해 항로의 중간 거점 역할을 했습니다. 고려 시대 기록에는 울릉도에서 공물을 바치고 왜구의 침탈을 피하는 주민 집단이 존재했다는 내용이 나와요. 왜구의 빈번한 침공과 그로 인한 주민 고초가 쌓이면서, 조선 개국 이후 울릉도를 바라보는 조정의 시선은 점차 '주민 보호'보다 '섬 비우기'로 기울어집니다.
공도정책(空島政策) — 400년 무인도의 시작
1417년(태종 17년), 조선 조정은 결단을 내립니다.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고 왜인의 거점 사용을 막기 위해, 울릉도와 독도(당시 우산도)에서 거주민 전체를 본토로 이주시키는 공도정책을 단행한 거예요. 이로써 울릉도는 약 400년에 걸친 무인도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조선 조정은 주기적으로 수토관을 파견해 왜인의 무단 거주와 자원 채취를 감시했어요. 하지만 섬에 백성을 두지 않는 원칙은 19세기까지 유지되었습니다. 공도 기간 동안 울릉도는 조선인에게는 금지된 동해의 빈 섬이었고, 일본 어민에게는 전복·강치(바다사자)·목재를 얻는 비공식 채취장이었어요.
일본 에도막부 시대인 1618년경, 오야·무라카와 가문이 받은 '울릉도 도해 면허'는 일본 어민의 울릉도 접근을 공식화했습니다. 그 결과가 1693년 사건으로 이어졌어요. 조선 어부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일본 어민과 충돌하고 납치되어 에도막부에 압송되었다가 돌아오는 일이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울릉도 귀속 문제를 둘러싼 외교 교섭이 시작됩니다. 결국 1699년(숙종 25년) 에도막부는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인정하고 일본 어민의 도해를 금지했어요.
공도 400년과 독도

출처: 한국관광공사 / KOGL 1유형 (출처표시)
동해 수평선 — 한국 동쪽 끝, 한국 영토를 품은 바다
400년의 침묵을 깨고 울릉도에 다시 사람이 들어온 것은 1882년(고종 19년)이에요. 조선 조정은 울릉도 개척령을 내리고 전라도·경상도 주민을 모집해 입도시켰습니다. 첫 입도 가구는 30여 세대에 불과했지만, 이후 내지 이민이 이어지며 인구가 늘었어요. 1882년은 임오군란과 같은 해(고종 19년)로, 내외로 격동하던 시기에 조정이 울릉도 재개척을 결정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는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격상하고 석도(독도)를 관할 구역에 공식 포함시켰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05년, 일본은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하는 내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이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한일 간 독도 문제의 직접적인 출발점이 되었어요.
독도는 한국 동쪽 끝, 한국 영토입니다. 울릉도에서 여객선으로 약 87km, 약 90분 거리에 있으며 기상 조건에 따른 결항이 잦아 방문 계획에는 반드시 여유를 두어야 합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 KOGL 1유형 (출처표시)
행남등대 — 동해 끝 불빛, 역사 서술의 시각 앵커
1882 개척부터 현대까지
일제강점기 울릉도는 어업 자원과 목재 수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도동·저동 일대에는 일본식 어업 시설이 들어섰고, 섬의 원시림이 일부 훼손되었어요. 1945년 광복 이후 울릉도는 대한민국 영토로 확립되었습니다. 한국전쟁(1950~1953) 당시에는 피난민 일부가 울릉도로 들어오기도 했어요.
전후 재건기를 거쳐 1980년대부터 관광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1990년대 해상 교통 개선과 함께 방문객이 늘기 시작했고, 2012년 관음도와 본도를 잇는 연도교가 완공되어 섬 북쪽 탐방 동선이 크게 확장되었어요. 2020년대 들어 울릉군은 울릉공항 건설 사업을 추진 중이나 2026년 현재 아직 개항 전입니다. 지금도 울릉도는 여객선으로만 접근 가능한 동해 유일의 외딴 유인 화산섬이에요.
현재 인구는 약 9,000명 수준으로, 어업·관광·농업이 주산업입니다. 오징어 어업과 약소 사육, 명이나물·호박엿 특산물 생산이 섬 경제를 받쳐 왔으며, 최근에는 청정 자연경관을 내세운 생태 관광 수요가 늘고 있어요.
울릉도가 지금도 특별한 이유
울릉도의 독특한 지위는 지리와 역사가 함께 빚어낸 결과입니다. 동해 한가운데 고립된 화산섬이라는 지리적 사실이 400년 공도라는 비정상적 역사를 낳았고, 그 공도 기간이 역설적으로 섬의 원시림과 생태계를 지켜 냈어요. 오늘 울릉도에서 볼 수 있는 너도밤나무 원시림, 나리분지 자생 식물군, 해식절벽 경관은 모두 인간의 손을 400년 덜 탄 덕분입니다.
제주가 탐라국 천 년의 자치 역사를 품은 유인도라면, 울릉도는 우산국 합병·1417 공도·1882 재개척이라는 단절과 재생의 서사를 품은 동해 외딴섬이에요. 그 역사를 알고 배 위에서 도동항을 바라보면, 절벽과 산이 뒤엉킨 첫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지도: © OpenStreetMap contributors (ODbL)
출처 및 라이선스
본 페이지는 다음 출처를 활용해 자체 작성한 학습용 여행 가이드입니다:
- 한국관광공사 / KOGL 1유형 (출처표시) — kogl.or.kr
-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TourAPI) / KOGL 1유형
- 해양수산부 / KOGL 1유형
- 경상북도 울릉군 / 공공데이터 (출처표시)
- © OpenStreetMap contributors (ODbL)
- 김부식, 「삼국사기」(1145) — 공공 도메인 (11세기 고려 관찬 사서, 저작권 소멸)
- 이중환, 「택리지」(1751) — 공공 도메인 (18세기 조선 사인 저작, 저작권 소멸)
댓글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