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의 오사카 — 難波宮부터 2025 만국박람회까지
5세기 난바궁부터 211년 스미요시 신사, 593년 시텐노지, 1583년 도요토미 오사카성, 1730년 도지마 쌀시장, 1871년 미트퍼드 영문 묘사, 1903년 통천각, 1945년 오사카 대공습, 1970·2025년 두 번의 만국박람회까지 — 오사카 1,800년의 여덟 변곡점을 짧고 가볍게 따라갑니다.
목차
오사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상업 도시예요.
도쿄가 1,400년·후쿠오카가 1,300년·시드니가 240년쯤 된 도시라면 — 오사카는 약 1,800년쯤 된 도시예요. 한반도와 중국 대륙으로 향하는 옛 일본의 첫 항구 가운데 하나로 출발해, 도요토미가 천하 통일의 상징을 한 채의 거성 위에 압축한 자리이고, 에도 시대 약 270년 동안 천하의 부엌이라 불린 일본 최대 상업 도시였어요.
그래서 오사카의 1,800년은, 정치 수도 도쿄와는 결이 좀 달라요. 도쿄가 권력을 중심으로 변신해 온 도시라면, 오사카는 돈·식탁·웃음을 중심으로 변신해 온 도시예요. 황금 다실, 운하 위 도매상 거리, 길거리 분식 노점, 만담 무대, 두 차례 만국박람회 — 같은 자리에서 약 1,800년 동안 빚어진 그 결을 따라가 볼게요.
이번 편에서는 그 1,800년이 통과한 여덟 변곡점을, 짧고 가볍게 짚어 봅니다.
1. 211 ~ 645 — 옛 도시 4중주: 스미요시·시텐노지·난바궁

옛 오사카 4중주 이미지
오사카가 자리한 요도가와 하구의 충적 평원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료 가운데 하나에 나니와(浪速)라는 이름으로 등장해요. 파도가 빠른 바다라는 뜻이에요. 5세기 닌토쿠 천황 치세에는 현재 오사카성 부근의 우에마치 대지에 난바궁(難波宮)이라는 왕궁이 조영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본격적으로 도시의 시계가 돌아간 출발점은 — 사실 이보다 약 200년 전이에요. 211년(전승), 항해와 와카의 수호신을 모시는 스미요시 신사가 옛 오사카 남부 해안에 창건되었어요. 일본 전국에 흩어진 약 2,300개 스미요시계 신사의 — 총본사예요. 본전은 스미요시즈쿠리라는 가장 오래된 일본 고유 신사 건축 양식의 원형으로, 위에 곡선을 두지 않고 직선 박공을 살린 형태가 특징이에요. 같은 시대의 시집 만요슈에 신사가 시제로 거듭 등장합니다.
593년에는 옛 나니와에 일본 최초의 본격 불교 사찰 시텐노지가 들어섰어요. 불교 공인 논쟁에서 모노노베 가문과 충돌한 끝에 승리한 소가 가문의 정치적 후원 위에 — 쇼토쿠 태자가 창건한 절이에요. 후쿠오카 다자이후 텐만구(905) 보다 약 312년·도쿄 센소지(628 전승) 보다 약 35년 앞서 자리잡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본격 불교 사찰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텐노지의 가람 배치 — 산몬·중몬·5층탑·금당·강당이 동서 직선 축 위에 일렬로 늘어서는 형태 — 는, 이후 일본 전국 옛 불교 건축의 표준이 됐어요. 시텐노지 식 가람 배치라는 학술 용어도 이 자리에서 나왔어요.
645년 다이카 개신 직후에는, 고토쿠 천황이 한때 도읍을 나니와궁으로 옮겨 — 다이카 개혁 조칙을 반포하면서 — 나니와가 잠시 일본의 도읍이 되기도 했어요.
같은 시기 도쿄 자리에는 아직 도시가 없었어요. 후쿠오카 다자이후도 730년 설치니까, 약 80년 더 뒤예요. 그 1,300년·1,400년 두 도시보다도 더 오래된 일본 옛 도시 정체성이 — 오사카가 자기 시계의 출발점에 두고 있는 첫 자리예요.
2. 1496 ~ 1583 — 이시야마 본원사에서 도요토미의 거성으로

도요토미 오사카성 이미지
옛 도시의 시계는 약 800년이 지난 1496년에 다시 한 번 크게 빚어졌어요. 정토진종 본원사파의 8대 종주 렌뇨가, 우에마치 대지 일대에 거대한 종교 자치 도시 — 이시야마 본원사를 창건했어요. 지내정(자급자족 종교 도시)이라 불리는 형식이었습니다.
1570년부터 1580년까지 약 10년 동안, 천하 통일을 노린 오다 노부나가의 군대가 이 본원사를 포위했어요. 이시야마 합전이라 불리는 이 장기 공방은 — 결국 화의로 마무리됐고, 본원사가 자리를 비우고 떠났습니다. 천연 요해로 둘러싸인 우에마치 대지가 — 빈 자리로 남았어요.
그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이 — 도요토미 히데요시예요.
1583년, 히데요시는 전국 통일의 정치적 상징을 한 채의 거성 위에 압축하기 시작했어요. 1584년 5층 천수각이 완공되면서, 오사카성은 — 전국 시대 가장 큰 거성 — 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성에는 황금 다실·이중 해자·천수단 등 — 그 이전까지 일본 어떤 거성에도 없었던 — 압도적 규모의 의장이 들어갔어요.
황금 다실은 — 다다미 약 3장 크기의 작은 다실 안 — 벽·기둥·천장·다구까지 모두 금박으로 두른 — 히데요시 특유의 미는 권력으로라는 미학을 압축한 자리예요. 일본 다도사 안에서도, 이 한 자리는 권력과 미의 가장 직접적인 결합으로 기록돼요.
이때까지의 오사카는 — 옛 외교 도시에서 — 전국 통일의 정치적 무대 — 로 한 번 빠르게 변신한 셈이에요.
3. 1614 ~ 1615 — 오사카 겨울·여름의 진과 전국시대 종결

1615 오사카 여름의 진 이미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8년 사망했어요. 후계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頼)가 어린 나이에 가독을 이어받았지만 — 세키가하라(1600)의 승자 — 도쿠가와 측과의 충돌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1614년 겨울 — 오사카 겨울의 진이 시작됐어요. 도쿠가와 군 약 20만 명이 오사카성을 포위했습니다.
이 차례 전투의 정점은 — 오사카성 남쪽 외곽에 — 사나다 유키무라가 쌓은 한 채의 토루 — 사나다마루(真田丸)예요. 사나다는 — 도쿠가와 측 화포 사거리를 정확히 계산해 — 성 본곽에서 약 200m 떨어진 자리에 — 반원형 외곽 토루 — 를 한 채 쌓았어요. 도쿠가와 군의 첫 본격 공세가 — 이 한 채의 토루에 묶여 — 큰 사상자를 냈고, 협상 끝에 1차 전투가 마무리됐습니다.
협상 조건으로 — 외곽 해자가 메워졌어요. 자연 요해 한 겹이 사라진 셈이에요. 1615년 여름 — 오사카 여름의 진이 다시 시작됐고, 5월 7일(음력) 천수 안에서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그 어머니 요도기미가 자결했습니다. 도요토미 일족과 — 전국시대 자체가 — 한꺼번에 막을 내린 거예요. 천수가 화염에 휩싸인 단 하루가 — 일본 전국시대의 마지막 한 페이지가 됐어요.
이 자리는 그래서, 일본 정치사 전체에서 — 전국시대가 마무리된 단 한 곳이라는 — 무게를 갖게 됐어요. 도쿄 측 에도성이 시작의 자리라면, 오사카성은 끝의 자리예요.
천수는 그해 한 번 불탔다가 — 1620년대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더 작게 다시 세워졌고, 1665년 낙뢰로 또 한 번 소실되어 — 약 270년간 천수가 없는 상태로 남았습니다. 현재 천수는 1931년 시민 성금으로 재건된 철근 콘크리트 박물관 동이에요. 5층 외관은 모모야마 양식 의장을 따르고, 박물관 안에는 — 도요토미 시기의 황금 다실·갑주·서간 — 이 전시됩니다.
4. 1615 ~ 1868 — 천하의 부엌과 도지마 쌀시장

에도 시대 천하의 부엌 이미지
에도 시대 오사카의 정체성은, 정치 수도 에도(현재의 도쿄)와는 완전히 다른 결로 빚어졌어요.
도쿠가와 막부 직할령 — 천령(텐료) — 으로 편입된 오사카는, 전국에서 모이는 쌀·면포·청주·다시마·어물·약재가 한 번 모여 다시 에도와 전국으로 흘러나가는 — 천하의 부엌(天下の台所, 텐카노 다이도코로) — 으로 불렸어요.
에도가 정치 권력의 중심으로 굳어진 같은 세기 동안, 오사카는 상도(상업 도시)라는 별명을 얻은 셈이에요. 한 도시는 무사·관리·번저의 결, 다른 도시는 도매상·운하·어시장의 결.
그 정점에 자리한 것이 1730년 공인된 도지마 쌀시장(도지마 코메이치바)이에요. 각 번 다이묘들이 에도·교토 시장에 보낼 쌀의 가격을 — 미리 합의해 거래하던 — 이 시장은, 수확 전 미곡을 종이 증서로 미리 사고파는 형식이에요. 학계에서는 이 한 자리를 — 세계 최초의 organized rice futures(조직된 쌀 선물 거래) — 로 평가합니다. 시카고 곡물 선물 시장(1848)보다 약 118년 앞선 거예요.
도매상 거리 — 센바(船場)와 — 그 옆 기타하마 — 가 — 이 시장의 무대였어요. 메이지 시대 들어서면서 도지마 쌀시장은 — 1939년 — 최종 폐쇄됐지만, 같은 자리에 들어선 오사카 증권 거래소(현재 오사카 거래소)가 — 그 상업적 DNA를 그대로 이어받아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일본인은 — 권력 없이도 — 도시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약 270년에 걸쳐 한 도시 위에 새겼어요. 도쿄·교토 사람들이 오사카 사람을 평할 때 — 셈이 빠르고, 흥정이 능하고, 친근하다 — 라는 — 한 줄 평이 — 사실 이 270년 안에서 출발한 도시 정체성이에요.
이 자리에서 한 번 더 — 막부 권위에 균열을 낸 사건이 있었어요. 1837년 2월 19일(천보 8년 음력 2월 19일), 오사카 마치부교쇼의 하급 관리이자 양명학자였던 오시오 헤이하치로가 — 천재와 흉작이 겹친 시기 쌀 상인의 매점매석에 분노해 — 빈민 구제를 외치며 무장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사건 자체는 단 하루 만에 진압됐지만, 막부 직할 도시 한복판에서 막부 관리가 봉기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 막부 권위의 상징적 균열로 — 일본사 교과서에 정착했어요.
5. 1868 ~ 1925 — 통천각·요시모토·다이오사카

1903 초대 통천각·루나파크 이미지
메이지 유신(1868) 이후의 오사카는, 산업화·근대화의 또 다른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어요.
1903년, 나니와구 일대 — 1903년 제5회 내국 권업 박람회 부지 — 에 — 파리 에펠탑 의장에서 영감을 받은 — 초대 통천각(通天閣, 쓰텐카쿠)이 — 인근 루나파크(Luna Park) 유원지와 함께 — 세워졌어요. 서민 오락의 상징이 됐습니다.
초대 탑은 1943년 화재와 금속 공출로 철거됐고, 현재 보이는 두 번째 탑은 1956년 재건된 거예요. 신세카이·잔잔요코쵸·구시카츠 다루마 본점이 함께 자리한 그 거리가 — 오늘까지도 — 이 시대 서민 오락의 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1912년, 만담(漫才, 만자이) 형식을 산업화한 흥행 회사 — 요시모토 흥업(吉本興業, 요시모토 코교) — 이 오사카에서 창업했어요. 이후 한 세기 넘는 일본 코미디 산업의 중심이 된 회사예요.
만담은 — 두 사람의 대화 — 로 진행되는 일본 코미디 형식이에요. 한 사람이 천연덕스럽게 엉뚱한 말을 하고(보케), 다른 한 사람이 순간 받아쳐 정정하는(츠코미) 역할 분담이 핵심이에요. 도쿠가와 시기 거리 만담에서 출발해 — 1912년 요시모토가 무대 산업 형식으로 안착시키면서 — 오사카가 웃음의 도시라는 별명을 갖게 된 출발점이에요.
요즘도 난바 일대에는 난바 그랜드 카게츠라는 — 요시모토 흥업 본거지 — 가 — 매일 만담 공연을 올리고 있어요. 일부 회차에는 영어 자막도 붙어요.
1925년은 한 줄 표지가 더 붙은 해예요. 1923년 9월 1일 간토 대지진이 도쿄를 직격한 직후, 오사카가 — 시역과 인구 합병을 동시에 단행하며 — 인구 약 211만 명으로 — 한때 일본 최대 도시 — 가 됐어요. 시정 사료는 이 시기를 다이오사카(大大阪)라고 불러요. 도쿄가 잠시 흔들린 사이, 오사카가 일본 도시 인구 1위를 — 잠깐이지만 — 차지한 시기예요.
1933년, 오사카성 천수각이 — 시민 성금으로 —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됐어요. 1665년 낙뢰 소실 이후 약 270년 만의 — 시민 손으로 다시 세운 — 천수예요. 현재 우리가 사진으로 알고 있는 오사카성 5층 외관이, 사실은 1933년 재건된 박물관 동이라는 사실은 — 알고 가면 더 흥미로운 한 줄이에요.
6. 1945 — 오사카 대공습과 전후 복원
전후 일본 대도시는 거의 모두 — 1945년 미군 B-29 전략 폭격을 거쳤어요. 오사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945년 3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미군 B-29 전략 폭격기가 — 시 전체에 — 8차례에 걸쳐 — 소이탄 공격을 가했어요. 오사카 대공습이라 불리는 이 작전으로 — 약 1만 명 이상이 사망 — 했고, 도시 시역의 약 35%가 잿더미가 됐습니다. 도쿄 측의 1945년 3월 10일 야간 공습과는 — 시기·도시·규모·전략 패턴이 — 모두 다른 — 별개 작전이에요.2
신세카이·도톤보리·중앙구 일대의 1903~1925년 빌딩 다수가 — 이 시기에 — 한 차례 사라졌어요. 통천각도 — 1943년 — 금속 공출로 철거됐고, 오사카성 천수각 콘크리트 동만이 — 1933년 재건 직후라 — 비교적 견뎠습니다.
전후 복원은 빠르게 진행됐어요. 도매상 거리·운하·도심 도로망이 1950년대 중반까지 거의 복구됐고, 1956년에 두 번째 통천각이 재건되면서 — 신세카이 거리에 — 다시 한 번 — 서민 오락의 결이 — 돌아왔습니다.
이 시기 직후에 자리잡은 음식이 — 다음 편에서 만나는 — 1955년 모츠나베 풍 길거리 분식과 — 1929년 발상의 신세카이 구시카츠 가게들이에요. 패전 직후 노동자가 빠르게 한 끼를 해결하던 결이, 그 이후 약 70년 동안 — 오사카 서민 미식의 정체성으로 — 굳어진 거예요.
7. 1970 ~ 2025 — 두 번의 만국박람회와 한신 대지진

1970 오사카 만국박람회·태양의 탑 이미지
전후 오사카는 — 박람회·테마파크·고층 빌딩의 도시로 — 또 한 번 모습을 바꿨어요.
1970년 3월 15일부터 9월 13일까지, 만국박람회 일본 첫 개최이자 — 아시아 첫 월드 페어 — 일본 만국박람회(日本万国博覧会, Osaka Expo '70)가 — 센리 구릉지에서 열렸어요. 주제는 인류의 진보와 조화. 약 6,422만 명이 입장했습니다. 당시 세계 박람회 사상 최다 입장객이에요.
박람회 한가운데에는 — 태양의 탑(太陽の塔, 다이요노 토)이 — 우뚝 솟아 있었어요. 높이 70m·디자인 오카모토 다로·세 개의 얼굴(과거·현재·미래)을 새긴 콘크리트 조각이에요. 박람회가 끝난 뒤에도 철거되지 않고 — 만박기념공원 한가운데에 — 그대로 보존됐어요. 오사카 시민이 우리 도시의 상징으로 가장 많이 꼽는 한 자리예요.
1994년 9월 4일, 간사이 국제공항(関西国際空港, KIX)이 — 오사카만 위 인공섬에 —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Renzo Piano)의 거대 곡면 지붕 터미널과 함께 — 아시아 최초 24시간 운영 국제공항으로 개항했어요.
그러나 그 다음 해 첫 달, 큰 재난이 인접 도시를 직격했어요.
1995년 1월 17일 새벽 5시 46분, 인접 도시 고베 직하를 진앙으로 한 — 한신·아와지 대지진(阪神・淡路大震災, Great Hanshin-Awaji earthquake) — 매그니튜드 6.9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어요. 약 6,434명이 사망하고, 고베·니시노미야·아시야 일대 가옥과 한신 고속도로 고가가 무너졌습니다. 오사카 도심에서도 진도 5강의 강한 흔들림이 있었고, 직격 피해는 고베 측이 압도적으로 컸어요.
이 지진 이후 — 간사이 전역의 — 내진 기준·고가 도로 설계·방재 훈련 체계가 — 한 차례 크게 개정됐어요. 외국인 여행자 입장에서는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 흔들림이 있으면 즉시 대피하지 말고, 책상 아래·머리 보호·흔들림 멈춘 뒤 신발 신고 비상구로.3 자세한 비상 가이드는 6편에서 한 번 더 정리할게요.
2001년 3월 31일,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USJ)이 고노하나구 사쿠라지마 인공 부지에 개장했어요. 2014년 3월 7일에는 아베노에 — 아베노 하루카스(300m·60층)가 — 당시 일본 최고 빌딩으로 — 완공됐어요. 현재 1위 자리는 도쿄 도라노몬힐즈 B타워에 양보했지만, 간사이 권에서는 여전히 가장 높은 빌딩이에요.
그리고 2025년 4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오사카만 한가운데의 인공섬 — 유메시마(夢洲) 부지에서 — 주제 생명이 빛나는 미래 사회 디자인으로 — 오사카 만국박람회 2025가 — 1970년 이후 약 55년 만에 — 다시 열렸어요. 이 글이 발행된 2026년 5월 시점에서는 — 박람회가 끝난 지 약 6~7개월이 지난 시점이에요. 박람회 인파가 빠진 직후 — 도시가 — 약간의 여유를 — 되찾은 시기로 — 권장해도 좋은 — 한 자리예요.
8. 1,800년 타임라인 한눈에

1,800년 타임라인 인포그래픽
오사카 1,800년의 흐름을 한 줄로 압축하면 이래요.
211년 스미요시 신사 → 593년 시텐노지 → 645년 다이카 개신과 나니와궁 → 1496년 이시야마 본원사 → 1583년 도요토미 오사카성 → 1614~1615년 오사카 겨울·여름의 진과 전국시대 종결 → 1615년 이후 천하의 부엌 → 1730년 도지마 쌀시장 → 1837년 오시오 봉기 → 1871년 미트퍼드 영문 묘사 → 1903년 초대 통천각·1912년 요시모토 흥업 → 1925년 다이오사카 → 1933년 오사카성 재건 → 1945년 오사카 대공습 → 1958년 두 번째 통천각 → 1970년 만국박람회·태양의 탑 → 1994년 간사이 공항 → 1995년 한신 대지진 → 2001년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 2014년 아베노 하루카스 → 2025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도쿄가 정치 권력을 중심으로 빚어진 도시라면, 오사카는 — 약 1,800년 동안 — 돈·식탁·웃음을 중심으로 — 빚어진 도시예요. 옛 외교 도시에서 출발해, 전국시대 종결의 무대가 됐고, 에도 시대 약 270년 동안 천하의 부엌이라 불렸으며, 1903년부터는 만담의 도시가 됐고, 1970년·2025년 두 번 만국박람회의 도시였어요. 그게 오사카 여행의 가장 깊은 매력입니다.
9.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천하의 부엌이라는 이 도시 정체성이 — 식탁 위에서 — 어떻게 그대로 드러나는지 — 오사카 미식 4종을 통해 — 만나 봐요.
1935년 회전 솥 위에서 발상된 타코야키, 1920~30년대 미나미(南) 일대에 정착한 오사카식 오코노미야키, 1929년 신세카이 구시카츠 다루마 본점 발상의 쿠시카츠, 그리고 8세기 율령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 가장 느린 발효 보존식 — 후나스시까지. 어디서 왔고 어디서 먹는지, 짧고 가볍게 안내합니다. 라프카디오 헌의 1894년 스미요시 단락도 — 그 자리에서 — 한 번 — 만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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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및 라이선스
본 페이지는 다음 출처를 바탕으로 자체 작성한 학습용 여행 가이드입니다.
- 일본 정부 공공데이터 포털 / data.go.jp (CC-BY 4.0, 政府標準利用規約 2.0)
- 오사카시 오픈데이터 포털 / odp.city.osaka.lg.jp (CC-BY 4.0, 大阪市オープンデータ利用規約)
- OpenStreetMap contributors (ODbL)
- Wikimedia Commons (CC-BY-SA / CC-BY) — 사실 검증용 외부 이미지 출처
- Algernon Bertram Mitford (Lord Redesdale), Tales of Old Japan (1871) — Project Gutenberg #13015, public domain (US)
- Lafcadio Hearn (Koizumi Yakumo), Glimpses of Unfamiliar Japan (1894) — Project Gutenberg #8128, public domain (US)
알저넌 미트퍼드(Algernon Bertram Mitford, Lord Redesdale, 1837-1916) — 영국 외교관, 1866-1870년 영국 공사관 통역·서기로 일본에 체류. 1871년 Tales of Old Japan 출간. Project Gutenberg #13015에서 영문 PD 본 무료 공개. 미트퍼드 1916년 사망, 사후 110년 PD 안전. ↩
오사카 대공습은 1945년 3월 10일 도쿄 대공습·1945년 6월 19일 후쿠오카 대공습과는 — 시기·도시·전략 패턴이 — 모두 다른 별개 작전이에요. ↩
드롭·커버·홀드 온은 일본 표준 지진 대응이에요. 한국식 즉시 야외 대피와 결이 다른 이유는 — 일본 건물의 내진 설계가 흔들림을 흡수하도록 설계되어 — 야외 낙하물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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