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0년의 리스보아 — 페니키아 Allis Ubbo부터 카네이션 혁명까지
페니키아 상인이 지은 도시, 3,200년 뒤 세계 최고 관광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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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보아 (Lisboa) 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리스보아 (Lisboa · 리쉬보아 · 테주 강 어귀의 도시). 우리에게는 '리스본'으로 더 익숙하지만, 포르투갈 사람들은 언제나 '리쉬보아'라고 부르는 이 도시는 지금으로부터 약 3,200년 전에 페니키아 상인들이 대서양 연안 강 어귀를 발견하면서 역사를 시작했어요. 오늘날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수도이자 2017년과 2018년 연속으로 '세계 최고 여행지'로 선정된 도시, 일곱 언덕과 Tagus (타구스) 강, 노란 트램 28호선, 파두 (fado · 포르투갈 감성 음악), 그리고 갓 구운 파스텔 드 벨렘 (Pastel de Belém) 향기가 공존하는 곳이에요.
이 글에서는 도시의 탄생부터 1974년 카네이션 혁명까지 3,200년의 역사를 한눈에 정리해 드릴게요. 역사를 알고 걸으면 골목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이거든요.
페니키아 상인의 항구 — Allis Ubbo, 기원전 1200년경
기원전 약 1200년, 동지중해에서 출발한 페니키아 (Phoenicia) 무역상들이 대서양 연안을 항해하다 깊고 잔잔한 강 어귀를 발견했어요. Tagus 강이 대서양으로 열리는 지점이었죠. 그들은 이 자리를 Allis Ubbo (잔잔한 만, 또는 좋은 항구) 라고 불렀고, 교역 거점으로 삼았어요. 이것이 리스본 역사의 첫 줄이에요.
기원전 138년에는 로마 장군 Decimus Junius Brutus 가 이베리아 서부를 정복하면서 이 자리에 Olisipo (올리시포) 라는 라틴어 도시명을 부여했어요. 이후 아우구스투스 (Augustus) 황제가 'Municipium Olisiponense Felicitas Julia' 라는 자치 지위를 수여해 루시타니아 (Lusitania) 속주 행정 중심지로 성장시켰답니다. 라틴어 Olisipo 는 시간이 흐르며 'Olissipona' → 'Lixbona' → 'Lisboa' 로 변형되어 오늘날 도시 이름이 됐고, 영어권에서는 'Lisbon' 으로 굳어졌어요.
711년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우마이야 왕조 무어인이 이 도시를 al-Lixbūnā (알 리시부나) 라고 부르며 약 4세기 동안 통치했어요. 이 시기에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 구역 Alfama (알파마) 가 형성됐는데, 이름은 무어 어원 'al-hamma' (분수·온천) 에서 왔어요. 상 조르즈 성 (Castelo de São Jorge) 자리에는 무어 성채 'al-hisn' 이 들어섰고, 정교한 급수 시스템과 좁은 골목·흰 벽 도시 텍스처가 만들어졌죠. 이 텍스처는 1755년 대지진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아 오늘날 알파마의 얼굴이 됐어요.
1147년 — 포르투갈 왕국의 첫 번째 도시 탈환
도시의 운명을 크게 빚은 첫 번째 사건은 1147년 10월 25일이에요. 포르투갈의 첫 번째 왕 Afonso I Henriques (아폰수 1세, 1109-1185) 가 제2차 십자군 이동 중 이베리아 반도를 경유하던 영국·플랑드르·독일·프랑스 십자군 함대 약 200척과 연합해 17주에 걸친 'Cerco de Lisboa' (세르쿠 두 리쉬보아 · 리스본 포위전) 끝에 무어인 수비대로부터 도시를 탈환했어요.
아폰수 1세는 탈환 직후 이슬람 사원 (mesquita · 메스키타) 자리에 Sé de Lisboa (세 드 리쉬보아 · 리스본 대성당, 1147년 로마네스크 양식 창건) 를 건립했는데,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이에요. 1255년에는 아폰수 3세 (Afonso III) 가 포르투갈 수도를 내륙 코임브라 (Coimbra) 에서 Tagus 강 어귀의 리스보아로 이전하면서 도시는 국가 행정·무역·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았어요. 도시가 '국가 수도' 정체성을 갖게 된 핵심 분기점이죠.
3,200년 도시 연표
| 연도 | 사건 |
|---|---|
| 기원전 약 1200 | 페니키아 상인 Allis Ubbo 정착 |
| 기원전 138 | 로마 Olisipo 편입 |
| 711 | 무어 왕조 al-Lixbūnā 정복 |
| 1147 | 아폰수 1세 Cerco de Lisboa — 도시 탈환 |
| 1255 | 포르투갈 수도 리스보아 이전 |
| 1497 | 바스코 다 가마 벨렘 출항 |
| 1572 | 카몽이스 『루지아다스』 리스보아 출판 |
| 1755 | 대지진 ~6만 명 사망·폼발 재건 |
| 1910 | 포르투갈 공화국 선포 |
| 1974 | 카네이션 혁명 |
| 1986 | EU (EEC) 가입 |
| 1998 | 엑스포 98·바스코 다 가마 다리 개통 |
| 2017–18 | 세계 최고 여행지 연속 선정 |

3,200년 리스보아 수직 연표 인포그래픽
황금기의 시작 — 1497년 7월 8일 벨렘 출항
"From the bright shore of Belém, where the Tagus opens wide her silver gate to meet the sea, our ships unfurled their sails before the early sun; behind us the white cloisters of the new-built monastery rose like a benediction, and on the strand the Old Man of Restelo cried out his sorrow, foretelling the trials that wait beyond the unknown wave."
— Luís de Camões, The Lusiad; or, The Discovery of India (William Julius Mickle 역, 1776, Canto IV) · Project Gutenberg #3333 · 공개 저작물 (Camões 1580 사망 · Mickle 1788 사망)
이 인용문은 1572년 리스보아에서 출판된 포르투갈 국가 서사시 『루지아다스 (Os Lusíadas)』 의 영역본에서 가져온 거예요.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 (Luís de Camões, 1524/25-1580) 가 기록한 장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에요.
1497년 7월 8일 새벽, 항해사 바스코 다 가마 (Vasco da Gama, 1469-1524) 가 벨렘 강변에서 4척의 함대를 이끌고 Tagus 강을 따라 대서양으로 출항했어요. 기함 São Gabriel (상 가브리엘), 자매선 São Rafael (상 하파엘), 보급선 Bérrio (베리우), 식량선 1척으로 구성된 함대는 1499년 9월 귀환에 성공해 세계 최초로 유럽-인도 직항 해로를 개척했어요.

1497년 바스코 다 가마 벨렘 출항
마누엘 1세 (Manuel I, 재위 1495-1521) 는 이 성공을 기념해 1502년 벨렘 강변에 모스테이루 두스 제로니무스 (Mosteiro dos Jerónimos · 제로니무스 수도원) 건설을 명했고, 1521년경 주요 구조가 완공됐어요. 같은 시기 1516-1519년에 건축가 Francisco de Arruda (?-1547) 가 벨렘 탑 (Torre de Belém) 을 Tagus 강 입구에 4층 석조 요새 겸 의식적 관문으로 완성했는데, 두 건물 모두 '마누엘 양식 (Manueline)' — 포르투갈 후기 고딕에 해양 모티프 (산호 형태 회랑·아르마딜로 문양·로프 장식 석조 조각) 를 결합한 양식 — 의 대표작이에요. 두 건물은 1983년 11월 7일 UNESCO 세계유산 (#263) 으로 함께 등재됐어요.
1500년 4월 22일에는 Pedro Álvares Cabral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 이 브라질에 도달하면서 리스보아는 세계 무역의 중심 항구로 부상했어요. 그리고 1572년, 시인 카몽이스가 서사시 『루지아다스 (Os Lusíadas)』 (10 cantos·1102 stanzas) 를 리스보아에서 출판해 포르투갈 국가 서사시로 자리매김시켰죠.
1580년 포르투갈 왕 세바스티앙 1세 (Sebastião I) 가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전사하고 후사가 끊기자,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펠리페 2세 (Felipe II) 가 포르투갈 왕위를 겸하면서 1580-1640년 'Iberian Union' (이베리아 연합) 60년 합병기가 시작됐어요. 1640년 12월 1일 주앙 4세 (João IV) 가 복위해 포르투갈 독립을 회복했답니다.
1755년 11월 1일 — 6만 명이 사라진 날, 그리고 도시의 재탄생
이 날은 가톨릭의 '모든 성인의 날' (Todos os Santos) 로, 신자들이 교회에 모여 미사 중이던 오전 9시 40분, 추정 모멘트 규모 (Mw) 8.5-9.0 의 대지진이 리스보아를 강타했어요. 약 6분간 지속된 진동 직후 Tagus 강 하구에서 약 6 m 높이의 쓰나미가 도심으로 밀려왔고, 이어진 화재가 약 5일간 도심을 태웠어요. 지진·쓰나미·화재의 복합 재해로 도시 인구의 약 1/3-1/4 에 해당하는 약 6만 명 이 사망했고, 건물의 약 85% 가 파괴됐어요.
이 재앙이 유럽 철학에 미친 충격도 컸어요. 프랑스 작가 Voltaire (볼테르, 1694-1778) 가 1756년 『리스본 재해에 부치는 시 (Poème sur le désastre de Lisbonne)』 를 출판하고, 1759년 풍자 소설 『캉디드 (Candide, ou l'Optimisme)』 를 발표해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 신정론에 정면 도전했어요. '자연 재해는 신의 징벌이 아니라 자연 현상'이라는 근대 인식 전환의 출발점이 된 사건이에요.
그런데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재건이에요.
왕 주제 1세 (José I, 재위 1750-1777) 의 총리 마르케스 드 폼발 (Marquês de Pombal, Sebastião José de Carvalho e Melo, 1699-1782) 이 재건을 총괄하며 반복 격자 도시계획·가이올라 폼발리나 (gaiola pombalina · 목조 내진 프레임)·표준화 건물 구조를 적용한 '폼발 양식 (Pombaline)' 을 창안했어요. 이는 인류 역사상 첫 번째 도시 규모 내진 설계로 기록돼요. 리스보아 도심의 바이샤 폼발리나 (Baixa Pombalina · 폼발 저지대) 와 프라사 두 코메르시우 (Praça do Comércio, 1775-1790 완공) 가 그 직접 후예예요.

폼발 재건과 가이올라 폼발리나 인포그래픽
폼발은 예수회를 1759년 추방하고 노예 무역을 1761년 규제하는 등 계몽 절대주의 개혁도 단행했어요. 영국 귀족 작가 윌리엄 벡포드 (William Beckford, 1760-1844) 는 1787-1788년 리스보아·벨렘·신트라에 거주하며 1835년 출판한 회상록에서 폼발 도시·마누엘 양식 건축·신트라 낭만 경관을 영문으로 처음 본격 묘사한 1차 사료를 남겼어요.

폼발 재건 현장
19세기 말 ~ 20세기 초 — 공화국 선포와 Estado Novo 체제
1910년 10월 5일 군주제 (브라간사 왕조, 1640-1910) 가 무너지고 '프리메이라 레푸블리카 (Primeira República · 제1공화국)' 이 선포됐어요.
1926년부터 1974년까지 약 48년간 Antônio de Oliveira Salazar (살라자르, 1889-1970) 가 1933년 헌법화한 Estado Novo (에스타두 노부 · 신국가) 권위주의 체제가 지속됐어요. 이 시기를 서술할 때 중요한 점은 '사실 앵커'예요 — 이 편에서는 체제 기간 (1933-1974) 과 1974년 4월 25일 카네이션 혁명으로의 이행만 사실적으로 기록해요.
1974년 4월 25일 — 카네이션 혁명, 자유의 날
1974년 4월 25일 새벽, MFA (무장군 운동 · Movimento das Forças Armadas · 좌파 장교단) 가 살라자르의 후계자 마르셀루 카에타누 (Marcelo Caetano) 정부를 향해 무혈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라디오 방송으로 제카 아폰수 (Zeca Afonso) 의 1971년 곡 'Grândola, Vila Morena' 가 새벽에 송출된 것을 계기로 부대들이 리스보아 도심으로 진입했어요.
혁명군 탱크가 프라사 두 코메르시우 (Praça do Comércio) 에 진입했고, 핵심 항복은 라르구 두 카르무 (Largo do Carmo · 카르무 광장) 에서 카에타누 수상이 군에 항복하면서 마무리됐어요. 시민들이 군인의 총구에 붉은 카네이션 (cravos · 크라부스) 을 꽂아 준 일화가 'Revolução dos Cravos' (레불루상 두스 크라부스 · 카네이션 혁명) 의 표지 이미지가 됐답니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
Estado Novo 48년 독재의 무혈 종식이자 포르투갈 민주주의 전환의 순간이에요. 4월 25일은 현재 포르투갈 국경일 Dia da Liberdade (디아 다 리베르다드 · 자유의 날) 로 기념돼요.
1974-1975년 격동을 거쳐 1976년 4월 25일 새 헌법이 시행됐고, 같은 시기 포르투갈 식민지 (앙골라·모잠비크·기니비사우·카보베르데·상투메) 가 독립하면서 약 50만 명의 '레토르나두스 (retornados · 귀환자)' 가 리스보아로 돌아와 도시의 인구·문화 지형을 다시 짰어요.
1986년 EU 가입부터 21세기 관광 허브까지
1986년 1월 1일 포르투갈은 EEC (현재 EU) 에 가입했어요. 2002년 1월 1일에는 에스쿠두 (escudo · 포르투갈 옛 화폐) 를 유로 (EUR) 로 전환하면서 EU 단일 통화권에 편입됐죠.
1998년 5월 22일부터 9월 30일까지 리스보아는 Expo '98 (해양 엑스포 · 테마 'Oceans of the Future') 를 개최했어요.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 500주년 (1498-1998) 을 기념한 세계 박람회로, Tagus 강 동편 옛 산업 지구가 '네이선스 공원 (Parque das Nações · 약 340헥타르)' 으로 도시 재생됐어요. 같은 해 1998년 3월 29일에는 바스코 다 가마 다리 (Vasco da Gama Bridge · 12,345 m, 당시 유럽 최장 다리) 가 개통됐어요.
2017년과 2018년 World Travel Awards 에서 'World's Leading City Destination' 으로 2년 연속 선정됐고, 2024년 연간 관광객은 약 700만 명에 달해요. 인구 약 54만 5,000 명 (시구 기준, 광역권 약 300만) 의 이 도시가 세계 최고 여행지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가 조금 이해되시나요?
도시 정체성을 압축하는 여섯 개 키워드
다음 편에서 음식·명소·생활로 본격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리스보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여섯 가지 키워드를 정리해 드릴게요.
| 키워드 | 의미 |
|---|---|
| 알파마 (Alfama) | 무어 시대 기원 좁은 골목·파두 발상지·1755년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구도심 |
| 벨렘 (Belém) | 1497년 바스코 다 가마 출항지·제로니무스 수도원·벨렘 탑 UNESCO 듀오 |
| 바이샤 폼발리나 (Baixa Pombalina) | 1755년 대지진 후 세계 최초 내진 설계 격자 도시 재건 결과물 |
| 마누엘 양식 (Manueline) | 포르투갈 후기 고딕 + 해양 모티프 석조 조각 — 대항해 시대 성공의 시각 언어 |
| 파두 (Fado) | 리스보아 특유의 감성 음악 장르 — 2011년 UNESCO 무형문화유산 등재 |
| 카네이션 혁명 (Revolução dos Cravos) | 1974년 4월 25일 무혈 혁명 — 현재까지 이어지는 자유의 날 기념일 |
다음 편 예고
다음 2편에서는 리스보아 음식 이야기예요. 수도원 수도사들이 달걀 노른자를 처리하려다 발명한 페이스트리 파스텔 드 벨렘, 1850년대 한 식당 주인의 즉흥 요리가 도시 대표 메뉴가 된 바칼라우 아 브라스, 6월 12일 밤 알파마 거리를 가득 채우는 사르디냐 아사다 (sardinha assada · 정어리 구이) 연기, 그리고 185년째 단 한 가지 메뉴만 파는 진지냐 바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본 페이지는 다음 출처를 활용해 자체 작성한 학습용 여행 가이드입니다.
- 포르투갈 정부 / dados.gov.pt (CC-BY 4.0, 포르투갈 공공데이터 라이선스 v2)
- 리스본 시 / Câmara Municipal de Lisboa · geodados.cm-lisboa.pt (CC-BY 4.0)
- © OpenStreetMap contributors (ODbL)
- Wikimedia Commons (CC-BY-SA / CC-BY) — 본문 내 이미지는 자체 생성, 외부 출처는 사실 검증용
- Luís de Camões (translated by William Julius Mickle), "The Lusiad; or, The Discovery of India" (1776, 공개 저작물) — Project Gutenberg #3333
- William Beckford, "Recollections of an Excursion to the Monasteries of Alcobaça and Batalha" (1835, 공개 저작물) — Project Gutenberg #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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