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산에서 한옥마을까지 — 조선왕조 발상지 전주의 1,400년
백제 완산에서 출발한 전주의 1,400년 — 892 후백제 견훤, 1392 조선왕조 발상지와 1410 경기전 태조 어진, 1593 임진왜란과 1614 재건, 1751 「택리지」, 1894 동학과 전주성 점령, 2010 Cittaslow·2012 UNESCO 미식도시까지.
목차
서울·부산·경주·강릉과 비교하면, 전주는 4중 정체성을 가진 도시예요. 1392년 조선왕조의 발상지(이성계 본관 전주이씨), 1410년 경기전과 국보 제317호 태조 어진,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전주성 점령으로 절정에 이른 도시, 그리고 2010년 한국 첫 city-wide 슬로시티(Cittaslow)와 2012년 한국 첫 UNESCO Creative City of Gastronomy까지 — 인구 65만의 중소 도시 한 곳에 왕조 발상지·민중 봉기·전통 보존·미식 거점이 동시에 얹혀 있어요.
이번 편에서는 백제 완산(完山)에서 출발한 1,400년의 흐름을, 1592~1597년 임진왜란/정유재란의 풍남문 소실과 1614년 경기전 재건을 거쳐, 1894년 동학농민운동 전주성 점령(SOLEMN-LITE 어조)과 1977년 한옥마을 보존, 2012년 UNESCO 미식도시 등재까지 forward-narrative로 따라가 봅니다. 한국전쟁(1950)의 그늘은 source 미수록 분으로 본 가이드 범위 밖에서 한두 문장 minimal reference로만 두었어요.
1. 완산(完山)에서 후백제까지 — 백제 거점에서 견훤의 40년 왕도로 (~660–936)

완산·후백제 도읍 인포그래픽
전주의 옛 이름은 완산(完山) 이에요. 산이 완전히 갖추어진 고을이라는 뜻으로, 백제가 이 땅을 경영하던 시기에 붙여진 이름이에요. 마한 소국의 하나였던 이 지역은 백제 통합 이후 중요 거점이 되었고, 660년 백제 멸망 이후 신라 통일기를 거쳐 고려로 이어집니다. 신라는 685년에 완산주(完山州) 를 두었고, 757년 9주 5소경 체제 정비 때에도 완산주는 한반도 서남부의 핵심 행정 거점이었어요.
그러나 전주가 역사의 한 축으로 강렬하게 등장하는 건 후삼국시대예요. 892년 신라 왕족 출신 장군 견훤(甄萱) 이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後百濟) 를 건국하면서, 이 도시는 한반도 서남부를 제패한 왕국의 수도가 됩니다. 견훤은 광주·나주 일대의 농업 생산력과 서해 교역로를 배경으로 약 40년 동안 신라·고려와 함께 삼국 구도를 형성했어요. 936년 견훤의 아들 신검에게 왕위를 빼앗긴 견훤이 고려 왕건에게 귀순하면서 후백제는 멸망하지만, 전주를 수도로 삼았던 그 40년은 전주가 단순한 지방 고을이 아님을 증명한 첫 장이었습니다.
| 시대 | 연도 | 전주의 위치 |
|---|---|---|
| 마한 | ~3세기 | 마한 소국의 하나 |
| 백제 | ~660 | 서남부 거점 — 별호 완산 |
| 통일신라 | 685 | 완산주 설치 |
| 통일신라 | 757 | 9주 5소경 체제 완산주 |
| 후백제 | 892–936 | 견훤의 왕도 — 약 40년 |
| 고려 성종 | 982–997 | 강남도(江南道) 중심 |
| 고려 | 1018 | 전라도(全羅道) — 전주 + 나주 |
고려 성종 대(982~997) 에는 전국 10도(道) 체제가 편성되면서 전주는 강남도(江南道) 의 중심 도시로 자리를 잡아요. 그 뒤 전라도(全羅道) 라는 도명 자체가 全州의 첫 글자와 羅州의 첫 글자를 합한 것이 됐으니, 전주는 지역명의 어원도 되는 셈이에요. 한반도 행정 지명에 자기 이름의 한 글자를 남긴 도시는 흔치 않습니다.
2. 조선왕조 발상지 — 1392 이성계·1410 경기전·태조 어진 국보 제317호

1392 조선 발상지 + 1410 경기전
전주의 1,400년에서 가장 큰 분기점은 1392년 조선왕조 건국이에요. 태조 이성계의 본관이 전주이씨(全州李氏) 였기 때문이에요. 이성계의 4대조 이안사가 전주에서 간도 지방으로 이주하면서 전주이씨라는 씨족명이 성립되었고, 조선왕조는 이 발상지에 어진을 봉안하는 사당을 세웁니다. 그 결과가 바로 1410년 태종 10년에 건립된 경기전(慶基殿) 이에요.
경기전이라는 이름 — 경사스러운 터전
경기전이라는 이름 자체가 경사스러운 터전을 뜻해요. 전라감영이 자리한 전주가 조선왕조 발상지임을 상징하는 사당으로, 한양에 종묘·사직·경복궁이 있다면 전주에는 경기전이 있는 셈입니다. 경기전 정전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 — 국보 제317호 태조 어진 — 이 봉안되어 있어요.
| 항목 | 내용 |
|---|---|
| 건립 연도 | 1410 (태종 10년) |
| 봉안 대상 | 태조 이성계 어진 (御眞) |
| 어진 지정 | 국보 제317호 |
| 어진 도상 | 1872년 이모본(移模本) — 1592년 임진왜란 소실 후 |
| 부속 시설 | 어진박물관 — 조선 왕들의 어진 모사본 10여 점 전시 |
| 경내 입장료 | 성인 3,000원 (어진박물관 포함) |
현재 봉안된 국보 제317호 태조 어진은 조선 27대 임금 중 원본이 남아 있는 유일한 어진이에요. 다만 우리가 오늘 보는 어진은 1872년에 다시 그린 이모본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원본이 소실됐기 때문이에요(다음 단원에서 다룹니다). 이모본이지만 원본 도상을 충실히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아요. 경내 어진박물관에서는 태조 어진 진본과 조선 왕들의 어진 모사본 10여 점을 함께 관람할 수 있고, 이 부분은 03편(명소)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풍패지향(風沛之鄕) — 왕조 발상지의 별호
조선왕조는 전주를 풍패지향(風沛之鄕) 이라 불렀어요. 풍패(風沛) 는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 풍·패 지방에서 따 온 말로, 왕조 창업자의 고향을 가리키는 별호예요. 한반도 도시 중에서 왕조 발상지라는 정체성을 가진 곳은 매우 드물어요. 서울이 조선 도성이라면, 경주가 신라 천 년 왕도라면, 전주는 조선의 시작이 출발한 자리예요.
경기전 일대에는 1899년에 세워진 조경단(肇慶壇, 이안사 단소) 도 있어, 이성계의 4대조 이안사를 기리는 공간으로 함께 관리됩니다. 경기전·조경단·전주향교(다음 편 cross-reference)·전라감영(다음 단원)이 함께 조선 발상지 사각 구조를 이루는 셈이에요.
3. 1593–1597 임진왜란·정유재란과 1614 경기전 재건 — 풍남문이 살아남은 까닭

1593–1597 임진왜란/정유재란 + 1614 재건 + 1751 「택리지」
1410년에 세워진 경기전이 무사히 오늘날까지 이어진 건 아니에요.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이어진 임진왜란, 그리고 1597년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전주 역시 큰 피해를 입었어요. 왕실 발원지이자 호남 곡창의 중심이었던 전주는 보호 우선순위가 높은 도시였지만, 그럼에도 경기전의 태조 어진은 소실되고 일부 전각이 불타는 피해를 입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조선 광해군 6년인 1614년 에 경기전이 재건돼요. 어진은 한참 뒤인 1872년에야 다시 그려져 봉안되었고, 이 1872년 이모본이 오늘 우리가 만나는 국보 제317호 어진이에요. 1410년 건립 → 1592~1597년 소실 → 1614년 재건 → 1872년 이모본 봉안이라는 200~280년의 호흡을 가진 셈이에요.
풍남문은 왜 살아남았나
같은 시기, 전주부성의 성문 중 하나인 풍남문(豊南門) 도 격동을 겪어요. 풍남문은 전라감영이 자리한 전주부성(全州府城) 의 남문으로, 한양에 숭례문이 있듯이 전주에는 풍남문이 있었어요. 조선 영조 44년인 1768년 에 관찰사 홍낙인이 다시 세운 누각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풍남문(보물 제308호)이에요. 일제 강점기에 동문·북문·서문은 철거되었지만 풍남문은 살아남았고, 1894년 동학 농민군이 입성한 성문으로 다시 한 번 역사의 한 장면에 등장하게 됩니다(다음 단원).
전라감영 — 호남 행정의 중심
조선 시대 전주는 전라도 전역을 관할하는 전라감영(全羅監營) 의 소재지였어요. 관찰사가 상주하며 도정(道政) 을 총괄하는 전라감영은 수백 명의 관속과 이서(吏胥) 가 일하는 행정 중심지였어요. 이 시기 전주는 국악·서예·한지·한식의 본고장으로 자리매김했어요. 전라도의 기름진 농토가 생산한 다양한 식재료가 전주 음식 문화의 물질적 기반이 됐고, 감영 잔치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요리 문화가 민간 한정식의 뿌리로 이어져요. 02편(식탁과 무형문화)에서 자세히 풀어 봅니다.
18세기 한 학자의 한 줄 — 「택리지」가 본 전라도
전라감영 음식 문화의 18세기 사료적 근거가 한 줄 있어요. 1751년 이중환(李重煥)이 「택리지(擇里志)」 팔도총론 전라도 항목에 적은 짧은 한문 한 줄이에요. 이 문장은 270년 뒤 2012년 전주가 UNESCO Creative City of Gastronomy에 한국 최초로 등재되는 사건과 거의 일대일로 호응합니다.
[!QUOTE] 이중환 (1751)
全羅道 物産豐饒 飮食精好 人多好色 勝於他道
(현대 한국어 의역) 전라도는 물산이 풍요롭고 음식이 정교하고 맛있으며, 사람들이 풍류를 좋아하기로 다른 도(道)보다 뛰어나다.
— 이중환 (李重煥), 「택리지(擇里志) 팔도총론 전라도」, 1751년 (Public Domain, 한국 위키문헌)
이 한 줄이 흥미로운 이유는, 2026년 전주의 미식 도시 정체성을 거의 그대로 미리 적어 둔 문장처럼 읽히기 때문이에요. 물산이 풍요롭다는 전라도의 비옥한 평야를, 음식이 정교하고 맛있다는 전라감영 요리 문화에서 다듬어진 정교함을, 사람들이 풍류를 좋아한다는 판소리·국악·한지로 이어지는 전라도 예술 기질을 한 호흡에 압축한 거예요. 270여 년 뒤 전주비빔밥의 30가지 이상 재료, 전주한정식의 12첩 반상, 콩나물국밥과 모주의 새벽 해장 페어링은 모두 이 飮食精好의 구체적 발현이라고 볼 수 있어요.
4. 1894 동학농민운동과 풍남문 — 민중이 입성한 성문

1894 동학농민운동 + 풍남문 SOLEMN-LITE
1894년은 전주가 한국 근대사의 민중 봉기 첫 anchor 도시로 기록된 해입니다. 그해 동학농민운동이 전라도 일대에서 일어났고, 전봉준(全琫準) 이 이끄는 동학 농민군이 전주를 점령하면서 봉기의 정점을 이뤘어요. 광주 5·18 민주화운동(1980) 이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 anchor라면, 1894년 전주의 동학농민운동은 그보다 86년 앞선 조선 후기 민중 자치의 첫 시도에 가까운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 단원은 celebratory(영웅화) 한 어조도, 비극으로만 다루는 어조도 피하고, 봉기의 의의와 풍남문이라는 민중 저항의 공간을 함께 짚는 SOLEMN-LITE 어조로 정리할게요. 일부 추모 단락은 ~습니다 어조로 두었어요.
1894년의 흐름 — 고부에서 우금치까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흐름은 한 해 안에 압축됩니다.
| 날짜 | 사건 | 의의 |
|---|---|---|
| 1894.1.10 | 고부민란 발발 — 전봉준 주도 | 봉기의 시작 |
| 1894.4.7 | 황토현 전투 — 농민군 승리 | 첫 정규전 승리 |
| 1894.4.27 | 전주성 점령 — 풍남문 입성 | 봉기의 정점 |
| 1894.5 | 전주화약 + 집강소 설치 | 자치 개혁 합의 |
| 1894.12.28 | 우금치 전투 — 패배 | 봉기 좌절 |
| 1895.4.24 | 전봉준 처형 | 봉기의 마무리 |
1894년 1월 고부민란에서 출발한 봉기는 4월 황토현 전투에서 첫 정규전 승리를 거둔 뒤, 4월 27일 전주성을 점령하면서 정점에 이릅니다. 농민군이 들어선 성문이 바로 풍남문(豐南門) 이에요. 1768년에 재건된 그 누각 아래 민중의 깃발이 들어선 셈이에요.
전주화약과 집강소 — 자치 개혁의 씨앗
전주성 점령 직후, 농민군과 조정은 전주화약(全州和約) 을 맺습니다. 이 화약의 결과로 전라도 53개 군현에 집강소(執綱所) 가 설치되었어요. 집강소는 농민군이 직접 지방 행정에 참여하며 폐정을 개혁하는 자치 기구였고, 한국사에서 민중이 직접 행정에 참여한 첫 사례로 평가됩니다. 비록 그해 12월 우금치 전투에서 농민군이 패하고 다음해 봄 전봉준이 처형되면서 자치 개혁은 좌절되지만, 전주화약 → 집강소 라는 짧은 모델은 그 자체로 한국 근대 민주주의의 한 출발점이 됩니다.
풍남문 — 건축 유산을 넘어선 기억 공간
이런 까닭으로, 전주의 풍남문은 단순한 건축 유산이 아니에요. 1592년 임진왜란을 견디고 살아남은 성문이자, 1768년 다시 재건된 누각이자, 1894년 민중 봉기의 입성문이기도 합니다. 03편(명소)에서 풍남문은 야간 조명이 켜진 누각으로 자세히 다루고, 06편(체크리스트)에서는 풍남문 일대 추모 매너를 짧게 짚어요. 본 가이드는 전봉준의 영웅화나 격렬한 전투 묘사 없이, 민중이 입성했던 성문 아래 한 줄의 침묵을 함께 두는 어조로 풍남문을 만나기를 권합니다.
5. 일제 강점기와 1977 한옥마을 보존 지구 — 다가동 일본인 거류지에서 역방향 도시 선택까지 (1910–1977)
일제 강점기 — 다가동 vs 교동·풍남동의 경계
일제 강점기(1910~1945) 에 전주는 전라북도 도청 소재지로서 행정 중심 기능을 유지했어요. 일제는 도시 근대화를 이유로 전주부성의 동문·북문·서문을 철거했지만, 다행히 풍남문은 남았어요. 같은 시기 일본인 거류지가 풍남문 북쪽 다가동 일대에 형성되면서, 전통 한옥 거주 지역과 근대 도시 구획이 한 도시 안에서 경계를 이루는 모습이 만들어집니다.
이 경계 속에서, 완산동·교동·풍남동 일대의 한옥 집단 지구는 보존의 방향으로 방치돼요. 일본식 근대 건축이 다가동 쪽으로 들어오는 동안, 교동·풍남동의 한옥은 일제 강점기 내내 한국인 거주의 정체성을 지키는 공간으로 남았어요. 이 시기의 경계가 오늘날 전주한옥마을의 지형적 원형을 만들었다고 봐도 좋아요. 1930년대 무렵에는 이 지역에 한국인 한옥 800여 채가 집중되면서 한국인 정체성 보존 거점으로 굳어집니다.
| 시기 | 다가동 (북쪽) | 교동·풍남동 (남쪽) |
|---|---|---|
| 1910 이전 | 전주부성 북부 | 전주부성 남부 + 풍남문 |
| 1910~1945 | 일본인 거류지·근대 건축 | 한국인 한옥 거주 집단 지구 |
| 1945 이후 | 일제 시설 철거·재정비 | 한옥 보존 가능성 잔존 |
1977 한옥 보존 지구 지정 — 역방향 도시 선택

전주 1977→2026 forward-bridging 5 마일스톤
1945년 광복과 1948년 정부 수립을 거친 전주는 1950년대 이후 호남 행정 도시로서의 위치를 유지해요. 한국전쟁 시기 1950년 7월 전주가 함락되었다가 1950년 9월 수복되는 격동을 겪었지만, 본 가이드는 여행 도시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기에 한국전쟁 시기의 자세한 서술은 가이드 범위 밖으로 둡니다.
전주가 오늘의 모습을 결정한 분기점은 1977년이에요. 1977년 전주시는 교동·풍남동 일대 한옥 집단 지구를 한옥 보존 지구 로 지정했어요. 당시 전국적으로 근대화와 아파트 건설 붐이 일어나 한옥이 급격히 사라지던 시기였는데, 전주는 역방향을 선택한 셈입니다. 이 결정 덕분에 오늘날 700여 채 이상의 한옥이 밀집한 전국 최대 규모 한옥마을이 살아남았어요.
| 시점 | 한옥마을의 변화 |
|---|---|
| 1930s | 다가동 일본인 거류지 경계 — 교동·풍남동 한옥 800채 집중 |
| 1977 | 한옥 보존 지구 지정 — 역방향 도시 선택 |
| 1980~90s | 한옥 신축·증축 지속 — 700채 이상으로 확대 |
| 2000s | 한옥 게스트하우스·공방 활성화 |
| 2010s | 연간 1,000만 명 방문객 — 한국 대표 문화관광지로 도약 |
1977년 보존 지구 지정 이후 수십 년에 걸쳐 한옥 신축·증축이 이어졌고, 1980~90년대에는 700여 채 이상의 한옥이 밀집한 전국 최대 규모 한옥마을이 형성됩니다. 2000년대 한옥 게스트하우스·전통 공방 활성화를 거쳐, 2010년대 이후로는 연간 1,0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한국 대표 문화 관광지가 되었어요.
6. 2010 Cittaslow → 2012 UNESCO Gastronomy → 2017 동아시아 문화도시 — 4 anchor 정체성의 국제 공인
1977년 한옥 보존 지구 지정으로 전통 보존 도시의 토대를 다진 전주는, 2010년대 들어 국제적인 문화 도시 인증을 연달아 받게 돼요.
2010 Cittaslow — 한국 첫 city-wide 슬로시티
2010년 전주는 Cittaslow(이탈리아 본부의 국제 슬로시티 운동) 에 한국 첫 city-wide(도시 전체) 슬로시티로 가입합니다. city-wide 슬로시티는 시 전체가 슬로시티 정신 — 지역 식문화·전통 보존·자연 환경 보호·공동체 결속 — 의 기준을 충족해야 가입할 수 있는 까다로운 형태예요. 한국에는 슬로시티 가입 도시가 여러 곳 있지만, 전체 도시가 동시에 가입한 사례는 2010년 전주가 첫 번째였어요.
2012 UNESCO Creative City of Gastronomy — 한국 첫 미식 도시
2012년 10월 전주는 UNESCO Creative City of Gastronomy(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미식 분야) 에 한국 최초로 등재됩니다. 아시아권에서도 거의 첫 동급의 등재였어요. 이 등재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270년 전 이중환의 飮食精好 한 줄, 그리고 전주비빔밥 30+ 재료·전주한정식 12첩 반상·콩나물국밥과 모주의 해장 페어링이라는 물질적 기반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였어요.
2017 동아시아 문화도시 — 한·중·일 3국 문화 거점
2017년에는 전주가 동아시아 문화도시(East Asia Cultural City) 로 선정됩니다. 한국·중국·일본 3국이 매년 한 도시씩을 선정해 동아시아 문화 거점으로 함께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에 전주가 한국 측 도시로 뽑힌 거예요. 1년 동안 동아시아 3국 도시 간 문화·예술 교류 프로그램이 집중적으로 운영되면서, 전주는 국내 미식 도시에서 동아시아 문화 거점으로 한 단계 더 도약했습니다.
4 anchor 정체성의 국제 공인
| 연도 | 인증 | 의의 |
|---|---|---|
| 1977 | 한옥 보존 지구 지정 | 국내 — 전통 보존 |
| 2010 | Cittaslow 한국 첫 city-wide | 국제 — 슬로시티 |
| 2012 | UNESCO Creative City of Gastronomy | 국제 — 미식 도시 (한국 첫) |
| 2017 | 동아시아 문화도시 | 한·중·일 — 문화 거점 |
이 네 인증의 결합이 전주의 현대 정체성이에요. 인구 65만의 중소 도시가 국제 미식 도시·국제 슬로시티·동아시아 문화 거점·국내 한옥 보존 거점을 동시에 보유하는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7. 전주의 4중 정체성 한 줄 요약
660년대 백제 완산에서 2026년 인구 65만의 한옥 700채 미식 도시까지의 1,400년을 한 줄로 압축하면, 전주는 조선왕조가 출발한 자리이자, 1894년 민중 봉기가 정점에 이른 도시이자, 한국 첫 UNESCO 미식 도시이자, 한국 첫 city-wide 슬로시티예요. 한 도시에 왕조 발상지·민중 자치·전통 보존·국제 미식이라는 네 정체성이 동시에 얹혀 있는 셈이죠.
| 정체성 | 전주의 anchor | 핵심 시기 |
|---|---|---|
| 조선왕조 발상지 | 경기전·태조 어진 국보 제317호·풍패지향 | 1392 이성계 → 1410 경기전 |
| 민중 봉기 anchor | 풍남문·전주성 점령·전주화약·집강소 | 1894 동학농민운동 |
| 전통 보존 거점 | 한옥마을 700채·교동·풍남동 | 1977 한옥 보존 지구 → 1,000만 방문객 |
| 국제 미식 도시 | UNESCO Gastronomy + Cittaslow | 2010 Cittaslow + 2012 UNESCO |
서울이 조선 도성이라는 단일 무게중심, 부산이 항구와 피난도시의 양면, 경주가 신라 천 년 단일 시대축, 강릉이 동해와 산이 만나는 6 키워드 복합 축을 가졌다면 — 전주는 왕조 발상지·민중 자치·전통 보존·국제 미식이 한 도시 안에 동시에 작동하는 4중 정체성 도시예요. 인구 65만의 중소 도시 한 곳에 이만큼의 정체성이 응축된 사례는 한국 안에서도 드물어요.
8.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전주의 식탁과 무형문화를 만나 봅니다.
조선 왕실 수라까지 올랐다는 전주비빔밥 30+ 재료, 짧고 도톰한 전주 콩나물과 남부시장 새벽 노포의 콩나물국밥, 막걸리에 한약재를 넣어 알코올을 거의 날린 모주, 그리고 12첩 반상의 전주한정식 — 4가지 향토 음식과 함께, 2012년 한국 첫 UNESCO 미식도시 등재와 2010년 한국 첫 city-wide 슬로시티의 의미, 그리고 판소리 서편제·한지·자만벽화 무형문화재 3 anchor envelope까지 — 전주만의 한식 본가·UNESCO·무형문화재 triad envelope를 한 자리에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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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및 라이선스
본 페이지는 다음 출처를 바탕으로 자체 작성한 학습용 여행 가이드입니다.
- 한국관광공사 / KOGL 1유형 (출처표시)
-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TourAPI) · KOGL 1유형
- 국토교통부 국가대중교통정보 (TAGO) · KOGL 1유형
- © OpenStreetMap contributors (ODbL 1.0) · Wikimedia Commons (CC-BY-SA 4.0 / CC-BY 4.0) — 좌표·사실 검증 참조
- 이중환 (李重煥), 「택리지(擇里志) 팔도총론 전라도」(1751) — Public Domain (>270년 경과), 한국 위키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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