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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에서 평창올림픽까지 — 동해와 산을 품은 도시 강릉의 1,300년

신라 757년 명주에서 출발한 강릉의 1,300년 — 1395 강릉대도호부, 1504 신사임당과 1536 율곡 이이, 1751 「택리지」, 1864 「대동지지」, 1941 경강선, 1990s 안목 커피, 2017 KTX·2018 평창동계올림픽까지.

목차

서울·부산·경주와 비교했을 때, 강릉만의 매력은 하나의 축으로 정리되지 않아요. 동해 짙은 청록 바다와 태백산맥 동쪽 능선이 한 도시 안에서 만나고, 거기에 1,300년의 역사와 1990년대 자판기 한 잔에서 출발한 커피 문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빙상 4개 시설의 현대 유산, 그리고 1504년 신사임당과 1536년 율곡 이이의 출생지라는 조선 학맥의 무게까지 — 6개 키워드(동해·해돋이·올림픽·커피·율곡·서핑)가 한 도시 안에 동시에 얹혀 있어요.

그래서 강릉은 복합 축(composite axis) 도시예요. 서울이 수도라는 하나의 무게중심을 가졌다면, 부산이 항구와 피난도시의 양면을 가졌다면, 경주가 천 년 신라 수도라는 단일 시대축을 가졌다면 — 강릉은 그 모든 도시와 다르게, 동해와 산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풍경 위에 1,300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도시라고 정리할 수 있어요. 이번 편에서는 그 1,300년의 흐름을, 한국전쟁의 그늘은 최소한으로 짚고, 2018년 평창올림픽의 환한 결말까지 forward-narrative로 따라가 봅니다.

1. 명주(溟州)에서 강릉까지 — 신라 9주 5소경의 동해 거점, 왕순식, 1395 강릉대도호부

명주·강릉대도호부 1,400년 행정 인포그래픽

명주·강릉대도호부 1,400년 행정 인포그래픽

강릉의 첫 역사 기록은 신라 통일 직후의 지방 행정 재편 과정에서 나타나요. 통일신라는 전국을 9주 5소경 체제로 정비하면서, 동해안의 요충지에 명주(溟州) 를 설치했어요. 명주는 글자 그대로 동해에 면한 고을이라는 뜻이고, 오늘날의 강릉·동해·삼척 일대를 아우르는 광역 행정 단위였습니다.

명주는 단순한 변경 행정 단위가 아니었어요.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영동(嶺東) 지방의 중심 도시로서, 해상 교역과 군사 거점을 동시에 맡았습니다. 신라 말 지방 호족이 분립하던 시기에는, 왕순식(王順式) 일가가 명주를 거점으로 세력을 형성해 후삼국 구도의 한 축을 이루기도 했어요. 동해안이 내륙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이자 왕성에서 가장 먼 변방이라는 양면을 가진 곳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시대 연도 강릉의 행정 단위 핵심 사실
통일신라 757 명주(溟州) 9주 5소경 체제 · 동해안 거점
신라 말 9세기 말~10세기 초 호족 분립 왕순식 일가 명주 거점
고려 995 명주도 성종 14년 행정 정비
고려 후기 동주 개칭 일시적 명칭 변경
조선 1395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태조 4년 · 강릉 지명 공식화

조선 태조 4년인 1395년에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로 개편되면서, 오늘날의 강릉이라는 지명이 공식화돼요. 강릉대도호부는 영동 지방 전역 — 지금의 강릉·동해·삼척·속초·고성·양양 — 을 관할하는 행정 중심지였어요. 영동 지방 관찰사가 강릉에 머무는 일도 있어서, 강원 감영(원주)과는 별도로 영동 행정을 총괄하는 작은 수도의 역할을 했습니다.

757년부터 1395년 강릉대도호부 개편까지가 약 640년, 그리고 1395년부터 오늘날까지가 약 630년. 강릉은 한국에서 1,300년 넘게 한 자리에서 같은 이름 계통의 행정 중심을 지켜 온 도시 중 하나예요. 인구는 2026년 기준 약 21만 명으로 중소 도시 규모지만, 영동 지방의 행정·교통·문화 결절점이라는 위상은 흔들리지 않았어요.

2. 오죽헌의 두 인물 — 1504 신사임당과 1536 율곡 이이가 한 집에서 태어난 80년

오죽헌·1504 신사임당·1536 율곡 출생지

오죽헌·1504 신사임당·1536 율곡 출생지

강릉이 한국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까닭은, 단순히 신라 명주의 거점이거나 조선 강릉대도호부의 행정 중심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율곡 이이(李珥, 栗谷, 1536-1584)와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이 한 집 — 강릉 북평촌의 오죽헌(烏竹軒) — 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에요.

신사임당 (1504-1551) — 조선 최고의 여성 예술가

신사임당은 1504년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시·서·화 (시·글씨·그림) 모두에 두루 능했고, 조선 최고의 여성 예술가로 평가됩니다. 초충도 계열의 풀과 벌레 그림, 묵포도도 같은 작품이 잘 알려져 있어요. 신사임당은 친정인 오죽헌에서 율곡 이이를 낳았고, 1551년 한양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율곡 이이 (1536-1584) — 조선 중기 최고의 성리학자

율곡 이이는 1536년 어머니 신사임당의 친정인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어요. 조선 중기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경세가로 성장해, 동호문답·성학집요·격몽요결 등 유학 교육의 핵심 저작을 남깁니다. 1577년에 쓴 「격몽요결」은 어린이를 위한 유학 입문서로, 오늘날까지도 한국 한문 교육의 기본 텍스트로 인용돼요.

1573년에는 강릉에 양산서원(暘山書院)이 세워져 그의 학문과 덕망을 기렸어요. 사후 조선 후기 내내 기호학파의 학맥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영남학파(퇴계 이황 계열)와 함께 조선 성리학의 양대 축을 이룹니다.

5만원권과 5천원권 — 한국 화폐 도안의 모자 조합

화폐 인물 발행 시점 도안 motif
5천원권 율곡 이이 1972년 첫 등장 오죽헌 건물·검은 대나무
5만원권 신사임당 2009년 첫 발행 묵포도도·초충도

한국 화폐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동시에 도안 인물로 등장하는 사례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유일해요. 5만원권은 한국 최고액권이고, 5천원권은 가장 흔히 쓰이는 권종 중 하나죠. 오죽헌 한 집에서 두 화폐 인물이 태어났다 — 이게 강릉이 한국인에게 특별한 도시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예요.

오죽헌이라는 이름은 검은 대나무(烏竹) 가 자라는 집이라는 뜻에서 왔어요. 오죽헌 뜰에는 짙은 보랏빛이 도는 검은 대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4~6m 높이의 줄기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요. 이 오죽 군락이 율곡과 신사임당의 고향임을 증명하는 살아 있는 상징으로 남아 있어요. 이후 03편(명소)에서 오죽헌은 국보 제165호 몽룡실(夢龍室) — 율곡이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방 — 과 함께 자세히 다룹니다.

3. 「택리지」가 본 18세기 영동 — '산과 바다가 함께 갖추어진 가장 빼어난 땅'

1751 「택리지」 + 1864 「대동지지」 영동 사료

1751 「택리지」 + 1864 「대동지지」 영동 사료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 강릉을 문헌으로 정리한 두 학자의 기록이 등장해요. 첫 번째는 1751년에 「택리지」를 쓴 이중환 (李重煥, 1690-1756), 두 번째는 1864년에 「대동지지」를 정리한 김정호 (19세기 중반 활동)예요.

이중환은 「택리지」 팔도총론 강원도 영동 항목에서, 동해의 장쾌한 바다와 태백산맥 동쪽의 맑은 물·모래사장을 극찬했어요. 영동 일대 여러 고을 중에서도, 그가 가장 높이 평가한 곳이 바로 명주(溟州) — 오늘날의 강릉이에요. 그 평가가 한 줄의 한문으로 압축되어 「택리지」에 적혀 있어요.

[!QUOTE] 이중환 (1751)

嶺東之地 山海俱備 溟州最勝

(현대 한국어 의역) 영동의 땅은 산과 바다를 함께 갖추고 있으며, 명주(강릉)가 가장 빼어나다.

— 이중환 (李重煥), 「택리지(擇里志) 팔도총론 강원도 강릉」, 1751년 (Public Domain, 한국 위키문헌)

이 한 줄이 흥미로운 이유는, 2026년의 강릉을 거의 그대로 미리 적어 둔 문장처럼 읽히기 때문이에요. 이중환이 말한 산과 바다가 함께 갖추어진 땅은 오늘날 강릉이 동해 바다 + 백두대간 자락 + 솔숲 + 경포 + 안목 커피거리를 한 도시 동선 안에 품을 수 있는 이유의 1차 사료예요. 18세기 정조 직전의 한 학자가 본 영동의 압축이, 270여 년 뒤 KTX 1시간 55분 거리의 복합 관광 도시로 그대로 이어지는 셈이에요.

이중환의 「택리지」가 영동의 자연 정체성을 한 줄로 압축했다면, 약 113년 뒤 김정호의 「대동지지」(1864)는 강릉부의 명승과 물산을 조목조목 정리한 19세기 지리지예요. 강릉부 항목에서 김정호는 경포호·한송정·경포대 등 강릉의 명승지를 상세히 기록하고, 동해 연안의 물산과 강릉부의 연혁을 조목조목 서술합니다. 「대동지지」 강릉부 항목은 오늘날 강릉을 답사할 때, 어떤 명승이 조선 후기 문인들에게도 이름난 곳이었는지를 검증해 주는 1차 사료로 자주 인용돼요.

사료 저자 연도 강릉 관련 핵심
「택리지」 강원도 영동 이중환 1751 "嶺東之地 山海俱備 溟州最勝" — 산과 바다가 함께 갖추어진 가장 빼어난 땅
「대동지지」 강릉부 김정호 1864 경포호·한송정·경포대 명승, 동해 물산, 강릉부 연혁 조목조목

4. 1941 경강선과 1990s 안목 자판기 — 대관령을 넘은 철도, 자판기 한 잔에서 시작된 커피 도시

1941 경강선 + 1990s 안목 자판기 커피

1941 경강선 + 1990s 안목 자판기 커피

근대로 접어들면서 강릉은 태백산맥 동쪽이라는 지리적 고립과 싸워야 했어요. 영동 지방이 한반도 동쪽 변경이라는 위치를 가진 이상, 대관령 고개를 넘어 수도권과 직접 연결되는 교통 수단이 들어오지 않으면 외부와의 흐름이 늘 한 박자 늦을 수밖에 없었거든요.

1941 경강선 — 서울과 강릉의 첫 직통 철도

이 고립을 처음 깬 사건이 1941년 경강선 (京江線, 서울~강릉) 철도 개통이에요. 험준한 대관령 고개를 우회하거나 통과하면서 서울과 강릉을 연결한 이 노선은, 강릉이 처음으로 수도권 교통망에 직결된 도시가 됐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다만 험준한 산악 구간의 단선 철도였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은 여전히 쉽지 않았어요. 이 완벽하지 않은 연결이 역설적으로 동해 연안의 자연을 과잉 개발 없이 온전히 보존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고요.

1980~90년대 자동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영동고속도로가 정비되고 경포해변(鏡浦海邊)과 정동진이 수도권 당일·1박 여행지로 급부상해요. 강릉이 한국인의 해변 여행 도시로 자리 잡는 첫 번째 큰 흐름이 이때 시작됩니다.

1990s 안목해변 자판기 — 강릉 커피 30년의 1세대

거의 같은 시기인 1990년대, 또 하나의 흐름이 조용히 시작돼요. 안목해변(安木海邊)에 놓인 자판기 커피예요.

처음에는 바다 앞에 자판기 한 대가 다였어요. 동해 바다가 보이는 해변 앞에서,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종이컵에 받은 커피를 손에 들고 파도를 보는 풍경. 이 단순한 풍경이 강릉 사람들과 수도권 방문객 사이에서 동해 바다 보면서 커피 마시는 강릉식 휴식법으로 굳어졌어요. 2000년대 초가 되면 수동 드립 커피 전문점들이 안목해변 일대에 들어서기 시작하고, 자판기 거리가 드립 커피 거리로 진화합니다. 2010년대 스페셜티 커피 시대가 열리면서, 강릉 출신 커피인들이 스페셜티 로스터리 카페를 열기 시작해요. 강릉 안목해변 1km 구간에 30여 개의 카페가 들어선 안목 커피거리는 이렇게 30년에 걸쳐 완성됩니다.

이 30년의 흐름은 02편(식탁과 커피 도시 문화)에서 자세히 풀어 봅니다. 여기서는 다만 1990년대 안목해변 자판기 한 잔이 2018년 KTX 강릉선 개통 이후 한국 커피 도시 1위 자리로 이어진 30년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만 짚어 두면 충분해요.

5. 1995 모래시계의 정동진 — 시청률 64.5%가 만든 해돋이 명소

강릉 동쪽 해안의 작은 마을 정동진(正東津)은, 한양(서울)에서 정동쪽에 위치한 나루라는 뜻에서 이름을 얻었어요. 19세기 김정호의 「대동지지」 강원도 항목에도 동해안의 명승으로 등장합니다.

이 작은 마을이 1990년대 들어 전국적 해돋이 명소로 도약한 결정적 사건이 1995년 MBC 드라마 모래시계예요. 한국 드라마사에서 시청률 64.5%(최종회) 라는, 오늘날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을 세운 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정동진역 플랫폼에서 촬영됐어요. 드라마가 끝난 뒤로도 정동진역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 수도권에서 청량리역 → 정동진역으로 향하는 밤기차 일출 여행이 한국 청춘들의 1990년대 후반 정서가 됩니다.

오늘날 정동진은 한국 대표 해돋이 명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어요. 정동진역 플랫폼 바로 옆 해변에 세운 거대한 모래시계 — 1년에 한 바퀴 돌아가는 8.06m짜리 밀레니엄 모래시계 — 가 정동진의 시그니처 조형물이고, 매년 12월 31일~1월 1일 새해 일출에는 수만 명이 모입니다. 정동진의 자세한 답사 방법은 03편(명소 8선)에서, 새해 일출 인파 대비는 06편(체크리스트)에서 다시 정리해요.

6. 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KTX 강릉선 — 빙상 4 시설·1시간 55분이 만든 도약

1995→2026 강릉 forward-bridging 5 마일스톤

1995→2026 강릉 forward-bridging 5 마일스톤

강릉의 오늘날 정체성을 가장 크게 결정지은 사건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에요. 빙상 종목 전용 경기장이 강릉에 집중 배치되면서, 강릉은 아시아에서 동계올림픽 빙상 거점을 보유한 도시 중 하나가 됐어요.

강릉올림픽파크 — 빙상 4 시설 통합

평창동계올림픽 빙상 경기는 강릉의 4개 시설에서 열렸어요.

시설 종목 위치
강릉아이스아레나 피겨스케이팅·쇼트트랙 강릉 중심부·경포 인근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스피드스케이팅 강릉올림픽파크 단지
강릉하키센터 아이스하키 강릉올림픽파크 단지
강릉컬링센터 컬링 강릉올림픽파크 단지

이 4개 시설은 2018년 대회가 끝난 뒤에도 강릉올림픽파크 로 통합 운영되며, 동계 스포츠 체험과 올림픽 유산 전시를 겸하고 있어요. 김연아 성화 봉송, 한국 컬링팀의 영미! 외침으로 기억되는 평창올림픽의 빙상 무대가 강릉에 있었다는 사실은, 강릉이 한국에서 동계올림픽 유산을 보유한 첫 도시가 됐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KTX 강릉선 — 서울에서 1시간 55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같은 해 2018년에 KTX 강릉선 도 개통돼요. 서울역에서 강릉역까지 1시간 55분(만종·평창 경유) 으로 단축되면서, 강릉은 수도권 1일 생활권에 진입합니다. 1941년 경강선 첫 개통 이후 80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서울에서 강릉까지의 시간 거리가 반나절에서 두 시간 이내로 줄어든 셈이에요.

이 교통 혁명은 강릉의 관광 인구를 단숨에 끌어올렸어요. 안목 커피거리는 KTX 당일치기 커피 여행 코스로 떠올랐고, 정동진 새해 일출과 경포해변 여름 휴가도 서울에서 아침에 출발해도 가능한 일정이 됐어요. 06편(체크리스트)에서는 새해 KTX 사전 예약 등 KTX 강릉선 활용 팁을, 05편(교통과 인근)에서는 강릉역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 동선을 자세히 정리해요.

1941 → 2018 — 강릉 교통 80년의 두 분기점

분기점 연도 의미
경강선 개통 1941 서울~강릉 첫 직통 철도 — 영동 고립 첫 해제
KTX 강릉선 개통 2018 서울~강릉 1시간 55분 — 수도권 1일 생활권

7. 한 줄로 압축한 강릉 — 6개 키워드의 복합 축 도시

757년 명주 설치부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까지의 1,300년을 한 줄로 압축하면, 강릉은 동해와 산이 만나는 자리에서 1,300년 동안 영동 행정 중심을 지킨 도시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2026년의 강릉을 한 줄로 다시 압축하면, 그 1,300년 위에 1990년대 안목 커피와 2018년 평창올림픽의 현대 유산이 얹힌 6개 키워드 복합 축 도시가 돼요.

키워드 강릉의 anchor 핵심 시기
동해 경포해변·안목해변·주문진항 신라 명주부터 — 1,300년
해돋이 정동진역·8.06m 모래시계 1995 모래시계 드라마 이후
올림픽 강릉올림픽파크 빙상 4 시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커피 안목 커피거리 1km 30여 개 카페 1990s 자판기 → 2018 폭증
율곡 오죽헌·5만원권·5천원권 1504 신사임당 · 1536 율곡
서핑 강문해변·사천해변 2010s 이후 — 한국 서핑 도시

서울이 조선 왕도라는 단일 무게중심, 부산이 항구와 피난도시의 양면, 경주가 신라 천 년 단일 시대축을 가졌다면 — 강릉은 동해·해돋이·올림픽·커피·율곡·서핑이라는 6개의 비대칭 축이 한 도시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곳이에요. 복합 축이라는 말이 추상적이라면, 어느 방향으로 하루를 짜도 새로운 강릉이 나오는 도시라고 풀어 말할 수도 있어요.

8.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강릉의 식탁과 30년 커피 도시 문화를 만나 봅니다.

1500년대 허엽의 초당 두부 설화에서 시작하는 초당두부, 1990년대 안목 자판기에서 출발해 2018년 KTX 이후 폭증한 강릉 커피 30년 evolutionary arc, 강원도 산악 식문화를 대표하는 감자떡, 동해 선상 어민이 차가운 바닷물에 비벼 먹던 물회 — 4가지 향토 음식과 함께, 1504 신사임당과 1536 율곡 이이의 출생지로서의 오죽헌 음식 문화 envelope, 그리고 주문진항 새벽 위판에 남아 있는 동해 어업 1,000년의 잔영까지 — 강릉만의 식탁과 30년 커피 도시 문화를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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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 강릉 식탁과 커피 도시 — 초당두부·강릉커피·감자떡·물회와 안목 30년·율곡 문화·동해 어업


출처 및 라이선스

본 페이지는 다음 출처를 바탕으로 자체 작성한 학습용 여행 가이드입니다.

  • 한국관광공사 / KOGL 1유형 (출처표시)
  •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TourAPI) · KOGL 1유형
  • 국토교통부 국가대중교통정보 (TAGO) · KOGL 1유형
  • © OpenStreetMap contributors (ODbL 1.0) · Wikimedia Commons (CC-BY-SA 4.0 / CC-BY 4.0) — 좌표·사실 검증 참조
  • 김정호 (金正浩), 「대동지지(大東地志) 강릉부(江陵府)」(1864) — Public Domain (>160년 경과)
  • 이중환 (李重煥), 「택리지(擇里志) 강원도(江原道) 영동(嶺東)」(1751) — Public Domain (>270년 경과), 한국 위키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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